취광
달의 노래
3389년[취광]
눈꺼풀이 서로 들러붙어 있었고, 마치 무언가 무거운 것에 짓눌리는 듯한 느낌.
흉근에도 바윗돌을 껴 올려 놓은듯한 무거운 느낌에, 오필리어는 눈을 힘겹게 떴다.
부드러운 침대 시트와, 한쪽이 지나치게 무너져 조금 삐걱대는, 낡으면서도 그리 좋은 형편이 아님을 확연히 드러내는 나무 침대.
자신이 눈을 감고서 꾼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은 버림받았다. 그것도 그저 알량한 실험체 하나로써.
손을 몇번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더니 이윽고 딱딱한 철제의 물질이 손에 잡혔다.
이런 평화로운 곳에서도, 이런 살벌한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오필리어는 헛웃음을 지었다.
눈앞이 흐려서, 지금은 잘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확실히 권총 모양의 형태.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가늠쇠를 더듬어서는, 총구를 잡고는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총구에서 흘러나오는 총의 한기가. 자신의 몸을 오싹하게 했다.
어째서 자신이 여기 살아있는걸까.
이미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오필리어는, 살아갈 마음조차도 없었다.
물 속에 가라앉아, 물에 비치는 하늘을 떠올렸다.
무의식적으로 물을 가로질러 떠오른걸까, 아니면 그 여자가...
아니, 그럴리는 없다. 그 외의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지만, 그 여자가 그랬을 리가 없다.
분명히 자신이 발각되면 안되므로, 고의적으로 유기해버린 것이었다.
되려 자신을 끌고가 어딘가에 또 가두어두면 모를까, 이런 호화로운 처사는 과했다.
침대에 고이 눕혀준다는건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방아쇠를, 다른 쪽 손의 엄지에 걸었다.
여기서 뇌가 터지면 그만. 그걸로 자신은 끝이었다.
허망한 웃음을 짓고는,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순간 무언가가 날아들어, 자신의 손을 세게 강타했고, 덕에 큰소리와 함께, 천장에 구멍이 뚤려, 천장 자재가 파스스 떨어졌다. 물론 자신의 회녹빛 머리카락도 몇줌.
"....뭐하는 짓이에요"
어린 소녀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자신의 오른쪽 귀에서 크게 들려왔다.
자신의 손을 세게 때린건, 그저 별 볼일 없는 물양동이.
덕에 물이 흘러넘쳐, 침대와 시트,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흠뻑 적셨다.
소녀쪽을 바라보자, 시야가 조금 밝아지는게 느껴졌다.
갈색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작은 소녀였다.
소녀는 두려운 눈으로 자신과, 자신이 쥐고이는 총을 번갈아 살폈다.
이윽고 어른들이 몰려와 바닥에 흐트러져린 물과, 침대 위에 미동도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저 아무말 못하고 입을 벌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필리어는, 총을 바닥에 던져보이고는 두손을 들고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였다.
"내가 데려오지 말자고 했잖니 레티!"
소녀의 이름인 듯한 이름이 불리고, 소녀의 모습이 눈에 띄게 초라해졌다.
아마 소녀의 윗사람인 것이겠지, 부모님이나. 혹은 그 다른 계층이라도.
그 어른들은 혀를 몇 번 차고, 소녀에게 몇 번의 꾸지람을 하고 나선 오필리어에게 넌지시 깨어났군, 이라고 중얼거리며 밖을 나갔다.
가면서 문을 세게 닫는 것도 잊지않고.
분명 그것은 깨어났으니 이제 네 갈 곳으로 돌아가라- 라는 의미였다.
비록 정신상태가 말이 아닌 오필리어도, 그 말 속에 담겨진 적개심은 눈에 띄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겐 돌아갈 곳이 없다.
자신의 상황에 눈물이 솟아나올 껏 같았다.
두 번이나 살았구나. 오필리어는 입 속에서 말을 중얼거렸다.
익사해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총으로 자살을 시도해보아도, 방해받았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이러는 것일까.
"차피 이렇게 된 인생, 죽어버리면 좋을텐데."
"그런말은 하는게 아니에요"
소녀가 다가와서 양동이를 손으로 집고는, 오필리어의 오른손과 이마를 살폈다.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안심하고는, 소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뱉었다.
"내가 무슨일을 겪은걸까...."
소녀가 입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껏 살아나니 총을 쥐고는 자살하려는 사람이며, 갑작스러운 꾸지람이며 소녀는 지금 모든 상황이 익숙치 않았다. 창문을 통해 작은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푸른 깃털을 가진, 새 한 마리가 침대의 맡에 앉았다.
소녀는 놀란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새를 향해 한번 환하게 웃어보였다.
"파랑새야, 깨어났어."
오필리어는 자신의 옆에서 지저귀는 파랑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파란 빛깔의 새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판데모니움에 있던 잿빛 색깔의 우중충한 새나, 고작이면 레지먼트에 있을 때 보았던 흔한 하얀색, 갈색의 새들 아니면 케이오시움으로 인한 괴물 새들 뿐이었다.
햇빛이 푸른빛에 반사되어, 새는 빛나는 듯이 보였다.
파랑새- 동화에서 나오는 꿈과 희망의 새.
자신의 처지와 상반되는 새를 보고는, 오필리어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새가 날아들어 소녀의 어깨에 앉았다. 아마 소녀가 주인인 듯 했다.
아니면 사람과 친화되기 어려운 새가, 사람을 보면 도망가기 바쁜 무리 중 하나인 저 새가 이렇게 사람이 사는 곳에 들어와,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죽고싶은 거에요?"
소녀가 다시 떠온 물로 오필리어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주며 물었다.
오필리어는 소녀가 이제껏 이런 일을 해온걸까, 하고 의문을 가졌다.
소녀가 다시 그래서 그런 곳에 누워있던 거에요? 하고 재차 물었다.
"....있던 곳에서 버림받았다."
이제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자기 인생에, 이런 삼자가 개입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오필리어였다. 사막에 누워있던 그를, 그 근처 마을로 식재료나 그 외 이것저것을 싣고 오던 사람들에 의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분명 아까 어른들의 말을 통하면, 이 소녀의 덕이 컸겠지.
데려오지 말자고 그랬다- 라는 어른들의 말을 생각하며, 마른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려던 소녀의 손을 쳐냈다.
소녀는 손을 내리곤, 아까의 소란으로 인한 침대시트를 정리했다.
시트 위에 떨어진 자신의 머리카락과, 아까의 소동으로 인한 나무 부스럼 몇 개들을 바닥으로 다 쓸어 내버리면서, 담담하게 소녀는 말했다.
"무슨 이유로요?"
이 아이야 말로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걸까.
오필리어는 문득 궁금해졌다.
나무 침대나, 주위의 환경으로 보아서는 이 소녀는 가난한 집안임이 분명했다.
손에 있는 여러 가지 생채기들로 예측하건데, 어느 부잣집의 시종이거나, 그러한 역을 도맡았음이 분명했다. 그다지 화려하지 않는 옷차림새나, 치우고, 말상대에 익숙하다는 것은 찝찝하게도 소녀의 그런 신분을 잘 나타내는데에 충분했다.
낯선 부상자를 집에 들이는 것 조차, 쉽지 않았을 터인데.
분명 여러사람의 반대가 있었음이 분명했을텐데. 소녀는 어떤 이유로 자신을 데려온걸까.
차피 이 곳을 떠난다면, 자신은 아까처럼, 총이나 검을 자신의 머리에 들이밀며 기도할게 분명했다. 자신의 모든 것은 그곳에 있었다. 돌아갈 곳에.
가족에게도, 이제는 동료들에게까지 버림받은 이 상황이 자신에겐 버거웠다.
자신이 그래도 쉴 수 있는 작은 모래섬위에 서있었다면.
모래섬이 무너져, 물에 빠진 와중. 큰 해일이 자신에게 덮쳐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세 한탄이나 하고 가라는 신의 배려인걸까.
아니 솔직히 오필리어는 어머니의 집이 불탄 그 순간부터, 신을 믿지 않았다.
가능성을 부르는 자신의 힘을 알게 된 후로는, 더 믿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자신에 의해서다. 조금이나마 더 살아있는 것도.
예시로 소녀에 의해서, 자신은 소녀와 만나고 있지 않은가.
소녀가 원했기에, 지금 자신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제각각 원하는 것이 있기에, 그것이 맞물려져 돌아가는 것이 세상이기에.
오필리어는 신을 믿지 않는다.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무언가라면, 그 사람들이 질투한건가요?"
"그들도 그 무언가를 원했는지도 모르지"
"....동등하지 못해서, 군요"
소녀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동등하지 못해서,
이런 자신을,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부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만 해도, 자신에게 괴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는가.
"저는, 동등하지 못하다면 동등하게 되면 된다고 생각해요."
소녀의 눈에서 굳은 무언가가 흔들렸다.
오필리어도 적잖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도 자신이 이런 말을 할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자신의 낮은 신분 속에서, 소녀는 매일같이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나아져 보이겠다고, 굳게 마음속에서 다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녀는 이미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물에 빠져, 가만히 있을 때, 소녀는 헤엄치려는 노력을 하는 중이었다.
그 후로 오필리어는 아무 생각도 못했다.
동등하게 된다는 소녀의 말의 귓가에서 맴돌았다.
오필리어는 눈을 손으로 가리고 웃었다. 얼마만에 웃어보이는건지 모를 정도였다.
정말 그만큼 시원하게 웃었다. 마치 처음 듣는듯, 자신의 웃음소리가 어색했다.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손을 적셨다. 손을 적시지 못한 눈물은 밑으로 흘러내렸다.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었고 기뻐서 우는 것도 아니었다.
멍청한 자신에 대한 회의의 눈물이었다.
지금 자신이 살아있는 것은,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래 이 징그러운, 오염되어버린 능력만 없으면 되는 것이다.
그럼 자신은, 그 여자의 무리들에게 당할 꼬투리도 없어진다. 멸시받을 이유도 없어진다.
다시 레지먼트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다시 그 사람들에게 끌려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훈련생부터, 천천히 차근차근히 한 계단씩.
죽지 않아도 된다. 돌아갈 곳은 돌아가기 위해 있는 것.
지금은 잠시 길을 잃은 것 뿐이다. 괴물 같은 힘, 이라는 미로길을 빠져나가면. 돌아갈 곳이 보일 것이다.
"죽으려는건 아니죠?"
오필리어는 자신의 손을 쪼는 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소녀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라며 새를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하지말라고 했다니. 자신이 자고 있었을때도 몇 번이나 이랬던 걸까.
오필리어는 새의 까만 눈에 자신이 비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어서 다음 말을 해보라는 듯한 눈에.
오필리어는 심호흡을 한번하고, 판데모니움으로 갈꺼야. 라고 대답했다.
이 징그러운 능력을 없애야한다.
그것이 길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열쇠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선임이나, 자료에서도 이 성기사의 힘을 없애버린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
오필리어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건 정보였다.
길을 찾기 위한 정보, 그 정보를 위해서라면 지금 오필리어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케이오시움에 대한 단서는 모조리 다 뒤져보아야 한다.
성기사의 힘은 케이오시움에 의한 것, 그 어떤 것이라도 놓쳐서는 안되었다.
케이오시움에 관련하여, 적격인 곳은 두군데.
케이오시움의 여파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레지먼트.
그리고 케이오시움에 관한 온갖 이론을 볼 수 있는 판데모니움.
오필리어는 엔지니어인 아버지의 방에 빼곡이 들어있던 케이오시움에 관련한 책들을 생각해냈다.
"....이 옷은 빌려갈께, 고마워"
오필리어는 이미 누더기가 된 자신의 제복을 바라보곤 씁쓸히 웃었다.
지금은 잠시 접어두는 것일 뿐이다. 버리거나 하진 않는다.
편안한 차림의 평상복, 오필리어는 소매를 손가락 끝으로 문질러보였다.
얇지도, 두텁지도 않은 옷이다. 이런 옷을 정말 자신에게 주어도 되는 것일까.
거듭 물어도 소녀는 괜찮다고만 했다. 소녀의 윗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상관없다고 했다. 아마 분명히 빨리 오필리어를 여기서 쫓아 보이고 싶은거겠지.
빌려간다. 빌려간다라는 의미는 다시 돌려주겠다는 의미이지만,
아마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 즈음은 오필리어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말뿐인, 간단한 답례인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오필리어는 그 속에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달았다.
그래,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만들어준, 그 상황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
기억해두지, 그 말 한마디를 소녀에게 덧붙였다.
판데모니움에 가려면 비행정으로 가야만 했다.
우선 그 비행정으로 어떻게든 판데모니움으로 가는 것이 우선무였다.
자신의 이름, 오필리어 브루노아. 그 이름이 통하진 않을 것이다.
오필리어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자신이 여기서 판데모니움으로 돌아갈 가능성.
매우 희박할 것이다. 아니면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가능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필리어는 마을을 빠져나와, 초원을 걸었다.
자신이 쓰러져 있던 곳과는 마을의 위치를 기준으로 반대 방향.
사막이 있는 곳이 아닌, 초원으로 가는 방향.
초원이라면 제국이거나 루비오나일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판데모니움의 위치를 알기엔 힘들다.
그만큼 비행에 있어서 해박한 사람이 아니면 안된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을 협조할 지는 의문이었다.
달이 찼다.
익사한 날과 마찬가지로 달빛이 흰색으로 차갑게 빛나는 날이었다.
그때의 자신을 생각하면 아직도 의아한건 마찬가지였다.
어떻게해서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걸까.
자신은 그때의 시각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몇 일이 지났는지 모른다.
물가에 있던 시간도, 소녀가 자신은 데려오기까지의 시간도, 그리고 누워있었던 기간도 오필리어는 모든걸 묻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이 무서웠다, 고도 말할 수 있었다.
이미 돌아갈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은 모두 자신을 망각해버린 것은 아닐까. 싶어서
"저기..!!"
생각을 정리하던 도중, 저 멀리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분명 마을 쪽의 방향이었다.
딱히 자신을 호명하진 않았지만. 자신을 부르는것을, 오필리어는 단번에 알아챘다.
소녀의 목소리, 그래 자신이 기억하겠다던 그 소녀였다.
"...뭐 놓고간게 있던가?"
"아니...그게 아니라"
소녀는 이제 막 뛰어와서 헉헉대는 숨을 골랐다.
오필리어는 여유롭게 기다려주기로 했다. 어차피 희미한 가능성을 부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시간이 흐른다는것을, 망각하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초원의 상태와, 달빛은.
시간이 흐른다고 보기엔 너무 평화로워서.
오필리어는 시간이 흐른다는걸 망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저..저도 판데모니움으로 갈래요"
오필리어는 놀란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의 배낭 안에서 작은 파랑새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 아마 들어가 있기 갑갑했던 것일지 모른다.
새가 마치 소녀의 말을 되풀이하기라도 하는 것 마냥 울었다.
새소리가, 매 시각마다 다르게 들리는 새소리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었다.
오필리어는 자신이 망각하고 싶어하던 생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얼굴 위로, 생각의 파편들이 흩어져 내렸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자신을 변화시켰고, 소녀를 변화시켰다.
그 시간의 흐름이, 달빛이 비추어 파라면서도 은빛으로 빛나는 파랑새의 울음소리에 맞추어서 세상에 지잉, 하고 울려 펴지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아?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소녀가 원해서 얻은 답이라면, 그걸로 충분했다.
"..레티, 그럼 잘 부탁한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있는 오필리어에게 놀랐는지, 네. 하고 놀란 어조로 짧게 대답했다. 오필리어는 다시 뒤로 돌아, 발에 밟히는 풀들을 느끼며 나아갔다.
풀에는 달빛이 비추다가, 발에 밟혀 머물게 된 듯한 사각거림이 있었다.
"그쪽 이름은.."
"오필리어."
이름에 대한 가슴시린 통증이 기억나면서, 오필리어는 마치 주위가 물로 변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오필리어, 자신의 이름에 맞는 최후. 그 최후를 맞이했었던 자신, 그게 자신의 이름의 참된 의미였다. 브루노아라는 성은 이제 필요 없었다.
오필리어 안의, 그 경험들이면 충분하다.
자신의 이름은 오필리어로 족했다.
"저도 잘부탁해요, 오필리어씨"
세 개 정도의 마을을 지났나.
그곳에는 모두 비행정에 관련된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오필리어는 막막함이 앞섰다. 비행정을 찾지 못하면, 길을 찾기는 커녕 아예 좌절되고 만다.
배낭에 기대 자고있는 레티의 어깨에서 마찬가지로 쉬고있는 새가. 자신을 향해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자신을 본다는것은 의외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라. 오필리어는 자신을 향해 응시하는 그 까만눈을, 무엇에 홀린것처럼 가만히 응시했다.
그 새에게 있어선 자신은 초조하게 비추어 졌는지도 모른다.
오필리어는 새의 파란빛깔에게 홀린 것일지도 모른다.
새가 조용히 울었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아니. 이건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아니었다. 시끄러운 소음이 오필리어의 뒤쪽에서 크게 울렸다.
새가 놀래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다시 돌아왔다.
새가 날아오른 곳에서는 큰 회색빛의 소음덩어리가 배경으로 깔려있었다.
오필리어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비행정이었다.
그것도 판데모니움에서 자신이 익숙히 봐오던, 종의 비행정이었다.
안에서 남자가 내렸다.
신기한 머릿빛의 남자였다. 아니, 달빛 때문에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파란 머리칼이. 은은하게 은빛으로 비추었다.
남자는 자신을 이넉이라고 소개했다.
아니 정확히는 비행정 앞의 기계에서, 그렇게 설명했다.
어째서인지 남자는 말하지 않는 주의였다.
기계에서, 딱딱한 여자의 음색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을 뿐이었다.
비행정의 조종판 뒤에는 무언가가 많이 싣겨있었다.
레티는 신기한 눈으로 이것저것 살펴보았고, 이넉은 손대지 말라며 손을 얌전히 들어보였다.
오토마타며 온갖 서적이며, 그 외 잡다한 물품은 거의 모여 있는 듯 했다.
오필리어는 이넉의 말을 고의적으로 무시한 채로 서류 더미 한 개를 빼어들어 넘겨보았다.
이넉은 딱히 분개하는 듯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그는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조종판으로 돌아가 이것저것을 딸깍이며 만질 뿐이었다.
"이건...."
오필리어는 서류의 내용을 넘기며 눈으로 휙휙 넘기다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구절에서 멈추었다.
오필리어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이름 위에 '사망'이라고 붉은빛으로 적힌 잉크를 따라 그렸다.
그래, 이게 옳은 것이다. 자신은 그 자리에서 죽은 것이다.
오필리어는 뇌 속이 혼란스러워 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죽은 사람으로 세상에 치부되어 있다는 것, 그게 아무래도 찜찜한 느낌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필리어는 애써 다시 시작하면 된다. 며 초연하게 문서를 한 장 넘겼다.
'죽은 후 푸른빛의 '가능성'의 존재로 잔존. 후에 가능성을 불러들임'
'마치 공간이 오버랩되는 듯한 현장'
'가능성의 존재는 케이오시움의 형태로 추측'
"통칭 누멘...."
오필리어는 그 밑에 자그마하게 볼펜으로 '괴물'이라고 적힌 문서를 읽고는, 문서를 밑으로 떨어트렸다.
이윽고 자신도 차가운 철제 바닥에, 무릎꿇고 앉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자신이 왜 물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던 것인지.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자신의 본체가, 사람이 아닌 능력일 뿐이라니.
'가능성'이란 것이, 끝없이 잔혹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지금 모습은 겉 껍데기에 불과했다.
'오필리어 브루노아'는 말 그대로 죽었다.
껍데기에 불과한 오필리어만이 여기 잔존해 있는 것이었다.
앞의 조작판에서 딱딱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냐, 고 묻는 딱딱한 목소리에는,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란게 담겨 있어 그나마 아까보단 부드럽게 들렸다.
"...넌 뭐하는 사람이야"
".....정보상"
처음으로 듣는 남자의 목소리에, 오필리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공간을 가르는듯한 약간 갈라진 목소리에, 지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기껏 까발려진 자신에 대한 것만이 머릿속에서 윙윙 돌고있을 뿐이었다.
"찾는 것이 있다면, 대가를 치루고 읽도록 해."
남자가 다시끔 말을 잇고는, 잔기침을 하곤 비행정을 띄우기 시작했다.
대가,
지금 자신에게 가진 것이 없는데, 무얼 치루란 것인가.
자신에게 남아있는 건, 몇 번이고 버려도 좋을 껍데기인 육체밖에 없다.
푸른 점조등에서의, 케이오시움 수치를 알리는 음색이 다시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듯 했다.
오필리어는 자신의 눈 앞에 떨어져있는 문서를 거세게 손으로 쳐 던져버렸다.
문서가 어딘가에 부딪혀, 무언가가 쏟아져 내려오는 소음이 들렸다.
오필리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쏟아져내린것은, 먼지가 가득히 낀 책들과 수첩들이었다.
책 표지의 '케이오시움' 이라는 글귀에, 오필리어는 무의식적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2천년대의 책이었다. 잉크가 번지고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오필리어는 더듬더듬 글자를 찾아 유추해가며 읽을 수 있었다.
오토마타, 그 외의 기이한 실험 등과 케이오시움의 정화, 소실.
말도 안되는 실험 주제로 큰 엑스가 좍좍 그어져있는 페이지들을 한 장 한 장 떨리는 손으로 넘겼다.
이대로 이 능력을 없애면, 자신은 그래도 껍데기인채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오필리어는 맨 처음 자신이 각오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둘 중 하나였다. 죽거나, 아니면 껍데기가 되거나.
오필리어는 잘 절제되지 않는 손으로, 황급히 수첩의 이름을 찾았다.
희미한 글씨지만, 오필리어는 그 사람의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도케르...."
오필리어는 책들을 껴안았다.
돌아가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벌일 수 있다고 이미 각오한 자신이었다.
더욱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이 자에 관해서든, 아니면 그 어떤 것이라도.
오필리어는 이넉에게, 대가를 치루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