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펫 2015. 3. 5. 23:30






The rock diamond - rebirth



봄 냄새를 기대했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어.



그에 너는 당연하지. 라며 두른 목도리를 잠깐 가볍게 올린다.

한쪽에 살짝 풀려 흩날리는 목도리가 유난히 길어보이는건 착각일까.


가끔 어지러이 환상이 보일때가 있다.

방금처럼. 무언가가 길어보인다던가. 짧아보인다던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던가 하는.



하얀 목도리 너머로 알 수 없는듯한 청록빛 아지랑이 라던가.



네게 그런말을 얘기해봤자 너는 질색하며 별 이상한 놈 보듯 취급하지만.

솔직히 이게 나는....





잠이 오지않아 낮이나. 오후에 선잠을 자면 항상 보이는게 있다.

사고를 당할때의 그 두리뭉실한 청록빛 공간. 거기서 웃고있는.

항상 위아래, 양 옆으로 길쭉 들쭉 하게 늘어나는 그 작자라는 사람은 말없이 날 향해 웃고있을 뿐이야.

이 얘길 하면 넌 날 바보취급할게 뻔하지만.


그리고 어김없이 네 하얀 목도리가 한차례 앞을 휩쓸고 지나가면 어김없이 그는 나를 보며 웃곤 뒤돌아 가버리고.




네가 내 어깨를 때리는 충격에 멍청히 다시 앞을 본다.




"난."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작게 말하곤 네 쪽으로 몸을 기울이니 네가 다시 어깨를 툭, 하고 때렸다.

분명히 개학날일테도, 너는 엄청 느긋한. -  내가 학교 가는 시간에 맞춘 10시 반 - 채로 나와 함께 걸어가는 중이었고.

다른 서둘리 움직이는 여러 사람들과는 달리 너는 날 때리는 동작 하나도, 말하는 동작 하나도 엄청 천천히 즐기듯 말하고있다.


아냐, 이것도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감각일지도 모르지.



"네가 파란색으로 늘어날때가 싫어."



그러곤 내 손에 들린 제 가방 - 솔직히 안에 든 것도 없이 가볍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너는 항상 나에게 무겁다며 들어주기를 강요했다. - 

을 낚아채듯 한번 휘청이며 저 멀리로 뛰어간다.








생각해보면 네 학교는 전혀 이 쪽 방향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네 집도 전혀 이 쪽 방향이 아니다.


그런데도 네가 무엇때문에 여기 왔는지 나는 알 바가 아니다.

실은 너를 조금 멀리하고 싶었어.


옆에서 작게 웃고있는 그를 향해 살짝 눈을 찌푸려 보였다.


내 가방에는 아직 다 읽지 못한 '망고가 있던 자리'가 얌전히 덜그럭거린다.





맞지 않아 발 뒷꿈치가 애려오는 교정에서. 나는 그냥 하릴없이 서있기만 할 뿐이야.

일부러 9시부터 쭉 연강을 신청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물론 이 취지는 좀 고생하면서 일찍 자보란 의미였지만.

생각해보니, 노트를 정리하면 당연히 새벽에 잘 수 밖에 없는데도.


화장실에서 비친 안경 밑으로 주욱 내려온 다크써클에 살짝 웃곤 그 밑을 꾹 눌러본다.

내 일이든, 현우씨 일이든, 누구의 일이든. 요새 많이 못잔건 사실이구나.



그래 게 중에는 네 일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로인해 네가 섭섭해 하는 일은 없길 바래.





최근 들어 드는 꿈이 있다.

아니, 요새는 종종 깨어있는 도중에도 꿈을 보기에 문제지만. 그래, 


작게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거울 뒤 그를 문질렀다.

항상 나를 보며 웃고있는 모습이 마지 깨진 스펙트럼같이 일렁인다. 잠을 못자서 그런거라고 애써 다시 위안하며 그에게서 눈을 뗐다.

종종 방안에서 그에게 묻곤했다. 얼굴도,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는 너에게. 그저 청록색으로 빛날 뿐인 너에게 나는 미친사람처럼 중얼거린 것이다.


그럼 그 사람은 그냥 웃어넘기곤 나에게 머릿속으로 한마디 단어만 선명히 전달해준다.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병원에 다시 가게된다는 것.

이렇게 계속 가게된다면, 아마 나중에 기록에 남을텐데.

작게 웃어버리곤 항상 병원으로 가는 길은 그리 유쾌하진 않다.

한창 개강시즌이라 바쁜 이 맘때쯤에,

모두가 정신이 팔려있는 즈음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냥 행하는 것이다.


아침 일찍 서서히 지하철이 지상으로 올라갈때 즈음이면 반대편 창가쪽으로 청색 빛이 책 위로 쏟아진다.

책의 구절은 미아가 망고를 잃어버린 대목.


절묘하게 빛이 글씨와 어우러져, 마지 글자들을 지우는 듯.

무거운 눈꺼풀에, 아직 이른 차 안, 아래만 미적지근한 공기에 몸을 한 번 떨고는 흘러 내려 떨어지는 글자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드문드문 앉아있는 사람들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저 한쪽방향으로 쓰러져 자고 있을 뿐이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 아닌 파란 빛은.


꿈속에서도 선명히 보이는듯해서. 언제쯤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글자를 보다 나는 잠들어버린걸까.





어김없이 그가 마주편에 앉아. 보이지도 않는 얼굴이지만 그래도 싱긋 웃어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


책이 넘어가 미아가 보라색으로 소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펼쳐진다.

책에서 글자가 튀어나와, 그를 감싸 파란빛으로 길게 늘어나는 것 같은 환상에 책에서 눈을 떼고 앞을 멍하니 바라봤다.



"널 볼때쯤에 내가 파랗게 된다는 걸 알고있어."



자각하지도 못한 말이 입에서 튀어나와 그를 파랗게 물들인다.

청록색이던 네가 점차 파랗게 변해간다. -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물들어 버린걸지도 모른다.


넌 어김없이 웃는다.

그러곤 항상 내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말하든 관심없다는 듯이 그냥. 몇마디 말을 던지고 갈 뿐이다.

제일 듣기 싫은 말 첫번째.



"그 아이가 날 죽였어."



듣기 싫은 말 두번째.




"날 위해서라도 기억해줘."




듣기 싫은 말 세번째.




"차피 너도 공범이잖아."




책을 떨어트려 귀를 막았다. 안경이 손에 부딪혀 비뚤어져 내려갔다.


너와 요새 거리를 두었던 이유는 굳이 말하자면 물론 나는 이것이 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그저 정 청일 뿐이고, 친구도, 학업도, 연인도 모두 있는 평범한 사람인데.

그렇지만 이 말을 또 무시할 순 없는것이. 아직도 내가 노트에 기억을 의존하고 있는 무능아이기도 하고. 

공범이란 오해를 나 자신에게 씌이고 싶지 않다.


그래 저건 굳이 말하자면 내 무의식이다.

무의식에서 진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수긍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란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

그래도 믿고싶지 않아서 병원에 가는 시늉을 했던 것 뿐이야.



"그리고 너는 원래 파란색이었는걸."





평소완 다른 말 붙임에 귀를 떼 안경을 고쳐쓰며 다시 한번 보기 싫은 끔찍한 나를 바라봤다.

2년전부터, 최근의 3개월전까지.


내 핸드폰 갤러리에, 연락처에, 노트에, 내 방 곳곳에 네 흔적이 남아있어.





"죄를 잊지마."






책갈피를 끼운채로. 책을 지하철에 놓고 내렸다.

도망치듯 깨고.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모든걸 도망치듯이 핸드폰의 모든 기록을 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