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쵸로마츠 독백] 낙엽

건펫 2015. 12. 9. 23:26




길을 걷다. 문득 작게 이거, 카드 떨어트리셨어요. 하는 작은 말소리에 뒤를 되돌아본다.


낙엽이 바스러져가는 초겨울.
나는 그래 깔끔한 이면과는 다른 꾀죄죄한 뒷골목의 사이에 서있어.



" 아, 감사합니다. "

생긋 웃어보이는 그 여자아이는 작게 목례를 하고는 제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랑 다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뒷골목에서 멀어져간다.

그들이 향하는건 깔끔하기만 한, 나와는 다른 그런 높디 높은 곳.

주워준 IC카드를 손수건으로 꺼내 문질렀다.
초록색의 손수건이. 제눈에는 더럽고 썩어버린 낙엽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만 같아서.



마츠노 쵸로마츠씨. 하고싶은게 뭔가요?

꼼꼼히 보험여부나, 이런저런 스펙 등을 적은 이력서를 몇번 손으로 만지다. 결국 생각 없이 말을 이것저것 내뱉으며 앞 창구의 남자에게 내밀고 왔다.

" 짜증납니다 "


그렇겠지.




멀어져가는 말소리, 멀어져가는 발소리, 멀어져가는 빛, 멀어져가는 사람들.

그 자신은 스스로 여학생이 멀어져간 곳을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ㅡ마츠노 쵸로마츠가 강박증을 가지게 된 건 고교 졸업 이후였다.
보잘것 없는 성적표를 구기곤. 고개를 숙여 형제들에게 돌아가는 길은 꽤나 무겁고 날카로웠다.

괜찮다며 성적표를 태워버리는 형제들에게서 나름의 위안을 얻었다고. 스스로는 말할 수 없다.

아니 실은 그들은 자신을 당당히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드러내며, 당당히 
쵸로마츠 자신에게는 등을 보여주는 형제들이었지만. 그 등은 지탱목이라도 되는 듯한 단단함이.

모든건 양면의 칼.
그 위안이 자신에게 송곳이되어.

행여나 미래에, 어쩌면 가까워질 미래일 수도 있는 앞날. 이런 형제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마츠노 쵸로마츠는 셔츠를 여미고 머리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돈, 황금. 그래 이 세상은 부당하게도 물질만능적인 세상이 아닌가.
그는 그 스스로 자신과 함께 나고 자라준 형제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돈을 벌자.


여섯이 함께 지내도. 문제없을 정도면 괜찮아.
여섯이서 무슨 일이 생겼을때 도움이 되는 정도면 완전 럭키잖아?




그는 초록색이 좋았다.
싱그러움의 색. 맑은 초목의 색.
빛을 바라보고. 빛을 향하여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높진않아도, 저마다 각각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고있는 그 모습!

그는 항상 빛을 바라보고 있는 나뭇잎이고 싶었다.

매일 아침마다 밥을 먹고는, 구인 모집 책자를 열어본다. 
그건 이미 쵸로마츠의 일상 속에선 당연한 일부가 된 것이다.

체크. 체크. 
점심때까지 선별을 끝낸다. 이후 남은 곳을 돌아본다.

그는 이 과정에서 단 하나라도 빼먹는 법이 없었다.


"쵸로마츠 형,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어~"


" ....남들만큼은 달려야지. "

빈정대며 말하는 토도마츠에게 그가 웃으며 말한 유일한 말이었다

마츠노 쵸로마츠씨. 여태껏 한 일엔 뭐가 있죠?


그가 대답하지 못한 질문.

자신보다 앞서나간 자들을 따라잡기 급급한 쵸로마츠에겐 꽤나 버거운 질문이었다.



발걸음을 옮겼다. 뒷골목이 아닌. 여학생이 갔던 그 길로. 
가방을 들고있는 여러무더기의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 강의가 끝난걸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쏟아져 나오는 사람의 무리로 다가갔다.

내가 따라잡기 급급했던. 초목의 무리들 사이로.




계속되는 면접, 계속되는 거절.
반복의 사이에서 그가 보았던건 초록빛의 잎이 아닌 썩어가는 낙엽.

그 자신은 스스로 초록빛이 아닌 꼬질꼬질한 낙엽의 색이 되어.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감색빛의 혼란이 올라왔다.






그래 그의 손수건이 아니라 그를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이 낙엽이 되어 바스러져 가고 있는것이다.



쵸로마츠는 멍하는 바라보며 그냥 허튼 생각을 할 뿐이었다.

" 낙엽이래도. 별 수 없는걸 "


하늘을 향해. 몸을 힘차게 굴린다.
떨어지지않게. 나무를 붙잡거나. 떨어진놈들은 다시 올라가기 위해 바람을 탄다.

남들 모르게 고군분투하고 있어.
여기서. 힘내고 있단말야.



남들은 나아가는것 같은데.
나는 제자리에서 뛰고있는 듯한 기분. 느끼지?

떨어진 나뭇가지가 새삼 높아서.
눈앞이 캄캄해서.
미래를 생각하면 한없이 낙엽이되어.



초록빛을 겉으로 두른 썩어버린 낙엽.
초목이 되지못한. 나뭇잎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평범한 나.




재능없는 그림쟁이?
음악적 감각이없는 피아니스트?
유연하지 못한 체조선수?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

여기엔 몇명의 낙엽이 있을까.
어디선가 누군가 떨어진 가지를 보고 울고있진않을까.




그래도.

" ...남들만큼은 달려야지. "


그는 다시 뒷골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뒤에서 낙엽들이 휙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