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쵸로&이치쵸로이치]Hollow 1
1.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눈 위에 올려져 있던 손을 힘겹게 들어 옆으로 치웠다. 벨소리와는 명백히 다른 소리가 귀에 들리자 알람이란걸 깨닫곤 어제 그냥저냥 웹서핑을 하다 침대 옆에 대충 올려둔 휴대폰을 들어 올린 손으로 저 멀리 치워버렸다. 땅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지는 소리가 이미 잠의 깊숙한 곳에서 잠겨있는 의식에게까지 희미한 소리로 들렸다. 배터리가 떨어져 나간건지 그 둔탁한 소리 빼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잠을 방해하지 않아서 다시 손을 침대 밖까지 삐죽 내민채로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만 이제 잠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면 아마 침대 위, 창문으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빛들 때문이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마치 빛이 일어나라는 듯 눈꺼풀 위를 마음껏 희롱하고 있어서, 손을 올려놨던- 완전히 깜깜했던 - 시야가 일순간 그레이색으로 물들어, 가시광선은 결국 잠을 저 멀리 치워주는 것이다. 애초에 이런 잠버릇 -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자는 - 이 없었다면 저 빛이 있다고 한들 충분히 잘 잘 수 있겠지만, 이미 몇 십년간 형성되어있는, 그것도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잠버릇을 고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렇게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에는 이유가 있다. 계절은 겨울, 아마 해가 늦게 뜰 시기지만 자신은 항상 오후 나지막히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냥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주로 밤이나 저녁에 이루어진다는 것도 있었지만, 선천적으로 스스로는 야행성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아침일찍 깨어도 새벽만 되면 눈이 초롱초롱 빛나 마치 동료들에겐 들고양이 같다는 요상한 말을 들은 적도 있었고, 잠을 자기 위해 듣는 백색소음이 따위는 결국 새벽의 들고양이한테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아침 업무를 나가면 항상 총기를 들고 꾸벅꾸벅 졸아대는 통에 동료들이 내 뒤통수를 때린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흐릿한 시선 너머로 결국 목표물이 두 개나 세네개 쯔음으로 분열하는 사태들이 여럿 발생한 적도 많고, 기면증이냐 무어냐 할 정도로 나는 잠에 빠져드는 것이 빨랐고, 그걸 이겨내기 쉬운 체질도 아니었다. 결국 그런 나에게 떨어진건 오소마츠의 ‘넌 오전엔 자라’라는 통보였고, 동료들의 나도 졸린 척 하면 될려나. 하고 투덜거리는 걸 제쳐두고 이렇게 마음껏 - 해가 제일 높게 떠 그 빛으로 나를 깨우기 전까지 - 잘 수 있던 것이다. 애초에 오소마츠가 나에게만 이런 명령을 한다고 한들 직접적으로 클레임이 온 적이 없었던 이유는,
“치약없네.”
나는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물로 꾹꾹 누르고는 12시까지 숙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이 드는 얼굴을 거울을 통해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거울 속의 나 자신에게 다짜고짜 두 손가락으로 눈을 찔렀다. 당연히 거울속의 나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래, 치약을 끝에서부터 밀어 짜지 않는 것도 나쁜 습관이었다. 치약 튜브를 이리저리 비틀어 나는 한 방울 정도의 치약을 칫솔 위에 올렸다. 오는 길에 치약, 치약. 속으로 반복하며 나는 칫솔을 입안으로 넣었다.
아마 그와 닮은 얼굴, 키, 신체능력. ‘형제’ 였으니까. 어찌 보면 혈연, 학연이 중요한 요즘 사회에서 오히려 내가 그의 말단으로 일하고 있는 - 그렇게 말단은 아니지만 쨌든 고위직 쯔음은 아니었다. - 것은 어찌 보면 이상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이런 사소한 혜택 정도는 다른 동료들도 괜찮다고 묵인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럴게 그는 나에게 힘든 일을 덜 시키거나, 혹은 그의 측근에 둔다던가, 아님 봉급을 더 준다던가 하는 혜택을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가 형제이니까 그가 벌어들인 돈을 얼마 네가 쓸 것 아니냐?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오소마츠는 그저 토도마츠에게 얼마 생활비를 보내는 게 끝이었고 나에겐 그냥 월급만을 달마다 보낼 뿐 그 어떠한 지원도 없었다. 아마 정을 끊기 위한 행동 즈음이려나, 나는 생각했다. 모종의 이유 이후로 오소마츠는 바로 이 일에 뛰어들었고, 나는 평범한 사무직을 하고 있다가 결국 오소마츠에 의해 이 더럽고 추악한 일거리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모종의 이유, 양치를 하다 중얼거리니 거품이 세면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아마 토도마츠가 보면 더럽다고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모종의 이유는 간단했다. 별 시덥 잖은 독 능력이 그냥 끝이었다. 이상할 노릇이었다. 주변에 능력자니 무엇이니 하는 사람은 은근히 TV로 많이 접할 수 있었다. TV뿐만이 아니라 경찰서에만 가도 초능력이니 뭐니 하는 사람 한 둘 즈음은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특이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게 보편적인 것 또한 아니었다. 다만 이 사회는 그런 능력자들을 끝끝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무언가 개목걸이 같은 것들을 채운다던가, 아님 코드를 살결에 박아 넣는다던가, 하는 인권적으로 따지면 엄연히 차별이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도 그들은 말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경찰로 가거나 보안성으로 가거나 했던 것들이다. 물론 그런 일이 나에겐 일어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다만 그 능력이 그냥 머리가 뛰어난 것 즈음으로 다들 생각하고 있던 오소마츠는 그렇게 끌려가지 않았고, 결국엔 팔에 아무런 코드도 새겨지지 않은채로 어떤 조직의 눈에 띄여 그는 그렇게 더러운 일들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게 우리 삼형제에게 있어서 분열의 첫 시작이었다. 그는 별로 아무렇지 않은 듯이 짐을 싸서 독립을 했고. - 우리가 위험하게 될 것이라는 자각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 나는 그렇게 토도마츠와 함께 우린 평범한 일반인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 생각해보면 한 지붕 아래에 능력자가 또 나오겠냐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 평범한 생활을 하다 회사에서 피던 담배의 맛이 이상해 바로 담뱃불을 끄고 - 환풍기마저 끄고 나온 후에야 그 안일한 생각을 저 멀리 날려보냈다. 내가 한숨을 쉰답시고 뱉은 날숨은 진한 초록빛의 - 오염물질 같아서 처음엔 섬짓했다. - 색을 띄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말이 끝난거였다. 이상현상에 손을 벌벌 떨며 오소마츠에게 전화한 게 그 이후의 일이었고 내 모습으로 위장한 오소마츠가 사장의 앞에 사표를 들이밀고 나를 끌고 나가는 게 그 이후였다. 그리고 그런 오소마츠가 정색하며 캐리어에 내 짐들을 마구 싸는 게 그 다음이었고 왜 그러냐며 울고 있는 토도마츠를 물끄러미 보며 숨을 참고 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소마츠는 사회에 반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비상한 두뇌 - 그의 능력 -을 소위 말하는 나쁜 짓이라고 할 수 있는 - 그냥 일개 조폭이나 마피아라고도 할 수 있는 행동들이지만 - 것에 쏟았고 그는 토도마츠에게 돈을 보낼 때도 그의 신원은 깨끗이 세탁해서 보낸다던가 하는 신중함을 보여주었다. 나에겐 그 모종의 이유 이후로 그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줄었을 뿐더러 그가 나에게 예전처럼 장난을 친다던가 하는 일 또한 없어졌다.
언젠가 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정을 떼려 그러는거야? 그냥 이 조직에 들어오고 얼마 안돼서 - 굳이 말하자면 멍청했을 때라고 하자 - 계속 차갑게 구는 그에게 혀를 차면서 물었던 것 같다. 용기를 내서 - 평상시엔 절대 안하던 짓이지만 - 그에게 다가가 안 그랬음 좋겠는데. 하며 딱딱한 그 얼굴, 그 뺨에 입을 한번 맞추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창피한 일이다.
그가 자신의 성적이건 무엇이건 그 명석한 두뇌가 능력 때문인 걸 자각하기 전까지, 형제끼리 무슨말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소위 연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그런 관계였다, 저와 오소마츠는. - 토도마츠는 물론 당연히 몰랐지만 - 솔직히 저 때만 해도 - 내가 조직에 들어오고 얼마 안됐을 때 - 나는 오소마츠를 형이나 연인 이라는 달콤한 호칭으로 서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순전히 내가 한 스킨쉽에 정색하고 나를 밀친 이후로 나는 내가 생각한 가설이 사실임을 인정하고, 그의 안에 있는 ‘쵸로마츠’라는 사람은 죽었다고 단정지었다. 모든 게 그의 대의나 이 조직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슬펐다. 그가 멀어지자 나도 이 조직을 위해서 오소마츠와의 정을 떼는 걸 선택했다. 물론 지금도 그를 사랑하지 않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고개를 저을 순 있겠지만, 그래도 그 이후 3년이란 시간은 별 감정 안 들게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쨌든 그 결과가 나에겐 그 어떠한 터치도 하지않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다.
돈 마인, 그렇게 매번 일어나 옷을 입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반장갑을 손에 낀 이후에 거울을 보며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늘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를- 상사, 즉 오소마츠. - 보러갈 때 하는 말이었다. 처음 그와 정을 떼기 위해 항상 스스로를 안정시키던 말은 이제 이것도 습관이 되어, 항상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치게 해주세요. 하는 기원이 되어 입에 달라붙었다.
토도마츠에게 굿모닝 뭐시기 하는 메시지를 넣어놓곤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집을 나섰다.
평상시 같으면 그냥 후드티나, 아님 간단한 니트만을 입곤 나서겠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스스로 원래 준비하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보통 2시쯤에나- 늦은 시간이다- 일어나지만 오늘은 달리 12시에 알람을 맞춰놓은 이유도 이것이었다 - 물론 이것도 늦은 시간이긴 하다 - 어제 집에 오는 길에 맥주 한 캔을 까 마시며 확인한 우편함에는 오소마츠란 이름으로 갈색 봉투가 들어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그가 매일 임무를 전해주는 방식이었다. - 왜인지 그는 인터넷 메일을 이용하진 않았다. - 내용은 그냥 평범했다. 결국은 거슬리는 조직 한 개가 있다, 요컨대 까뒤집고 와라 등의 글자들, 나 말고도 다른 동료들도 같이 있는 건 당연지사였고. 결국 나에게 내려진 명령은 그냥 그 조직의 연회장이건 뭐건 접선지건 - 실은 그 부분은 제대로 안 읽고 넘겨버리지만 - 가서 몇 번 숨쉬거나 담배 몇 번 태우고 오면 되는 거였다. 물론 비상시엔 총질을 하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으슬으슬 추운 기운에 쵸로마츠는 걸친 코트를 더욱 더 꼭 싸맸다. 시간은 이제 5시, 슬슬 해가 떨어질 시간이었다. 그는 그가 맨날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아닌, 아마 조직에서 저를 위해 여기까지 끌고 왔을 뉴 비틀에 몸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여러모로 그가 사용하는 독은 그 곳에 있는 사람들에겐 치명적일 것이다. 민간인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영 그런 꺼림칙함엔 무뎌진 게 일상이라 한숨을 한 번 쉬고 엑셀을 천천히 밟았다. 한번 내쉰 한숨은 짙은 초록빛이 되어 마지막엔 차 안에서 희미하게 사라졌다.
2.
뭐 벌써 진을 빼는 건 너무 무리 아니겠어?
아는 얼굴은 찾으며 들어온 회장 분위기는 마치 클럽 같아서 - 솔직히 말하자면 좀 더 사교회 같은 그런 중세시대적인 생각을 하고 왔던 자신이 조금 창피했다. - 괜히 빼입고 왔나 싶어 자신의 세운 머리를 다시 손으로 꾹 누르며 머쓱해 하고 있자 평상시에도 자신과 종종 임무를 나가는 동료가 등을 툭 치며 그렇게 말해왔다. 무슨 말이냐고 그냥 넌지시 묻자 동료는 자신이 들고 있던 칵테일 잔을 넘기며 그냥 지금은 즐기자는 거야. 하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요컨대 그냥 난동부리는 것보단 조금 즐기고 싶다는 말 아냐. 요 근래 느껴본적 없는 분위기에 쵸로마츠 스스로도 취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조금 흥이 난 것인지 묵묵히 그 동료의 웃는 얼굴을 내버려두고 다른 손에 들린 지포라이터를 - 담뱃불 용도였기에 - 코트 주머니에 넣고 그냥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는게 끝이었다. 방금 얘기를 들었던 것일까, 이번 총 책임자의 목소리인지 뭔지가 한쪽만 꽂은 이어폰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이 팀원은 가끔 제 형 - 그러니까 오소마츠 -를 그대로 빼다 박은 것인지 여유 넘치는 목소리에 쵸로마츠는 입을 손으로 막고 한숨을 쉬었다. 여기저기서 비추는 형형색색의 스포트라이트, 그리고 그것을 제외하면 어둡기만 한 그 환경에 손 틈새로 조금 삐져나온 짙은 초록의 숨은 눈에 띄지도 않은 채로 그냥 허공에서 휙 하니 사라졌다. 아차, 하곤 그는 목에 냉큼 오닉스 색의 흑색의 초커를 찼다. ‘ 즐기자 ’ 는 명이 떨어진 지금은 최소한 능력을 안 쓰는게 답이었다. 그도 그럴게 스스로의 능력은 스스로도 조절 할 수 없는 노릇이라 - 있다면야 숨을 참는 정도밖에 더 될려나. - 괜히 초커를 빼고 숨쉬고 다니다보면 제 동료들이 하나씩 죽어나갈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초커는 조직에 들어오고 몇 일 이후에 오소마츠가 제 목에 차준 것이었다. 원래라면 국가에 등록을 하고 실시한 검사 이후 국가가 개목걸이든 코드든 뭐든 해줄 노릇이었지만, 스스론 그렇지 않았기에 나름 조직에서 해준 검사 이후 내린 방편이었을 것이다. 무슨 원리인지 무슨 작동 메커니즘인지는 모르지만, 초커를 차고 있으면 제 숨은 그냥 걸어다니는 보통 사람의 숨과 똑같았다. 초커를 받기 전엔 그저 집 안에서 쭈그려 앉아만 있었기에, 그 사실을 듣고 나선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도, 동생의 얼굴이든 무엇이든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행여나 제 숨으로 오소마츠의 목을 조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그는 새로 오소마츠가 내 준 방안에서만 틀어박혀 있었고, 그가 말해준 사실들과 초커는 계속해서 스스로가 사람과의 관계나 사랑하는 자와의 이별을 생각하지 않게 해주어서 그 당시만해도 기뻤다. 지금은 여러 명분으로 멀어진 사이였지만. 그래도 쵸로마츠는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선 오소마츠가 목에 해 준 초커를 그때만큼은 항상 손가락으로 쓸어내리곤 했다. 비록 3년이란 시간이 있었지만, 오소마츠가 그리운 때나 그가 냉담하게 대하는 현실에 서글픔이 들 때면 항상 그 목에 있는 초커를 당겨 만지작 거리곤했다. 이건 그만의 비밀이자, 다른사람이나 오소마츠는 절대 모를 비밀이기도 했다. 그 당시 끝나버린줄만 알았던 자신에게 새 세상을 열어준 초커가, 또 다른 사람이 아닌 오소마츠가 준 것이기도 했기에 스스로에게 있어선 중요한 물건이었다.
아, 옛날일을.
입으로 그렇게 나지막히 내뱉곤 아직 남아있던 칵테일을 단숨에 들이켰다. 과거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서글픈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인가보다. 하고 독백했다. 목을 타고 넘어오는 알코올이 씁쓸했다. 과일향의 상큼한 칵테일을 상상했건만 아마 마티니쯤 됐던건지 독한 맛에 켁 하고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진한 알코올 향이 코까지 넘어와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전부 한 번에 마셔버린 스스로를 원망하고 또 이런걸 마시고 있던 동료를 한번 원망했다.
나름 술에 약한건 아니었다, 술 취향은 단언컨대 일본주. 20도쯤 되는 그 술을 항상 마셔댔던 자신이었기에 그건 확실할 수 있었으나 왜인지 벌써 그것 조금으로 취하기라도 한 걸까, 눈 앞에 보이는 헛것에 눈을 마구 비볐다. 손목시계 가 살결에 쓸려 아마 눈가가 조금 빨개졌을거라고 생각한다, 조금 따끔거렸다. 아니 이건 저 앞에 제가 잘못 보고 있는 사람 때문일거 같기도 했다.
오소마츠, 그가 왜인지는 몰라도 회장 구석, 가에 쫙 늘어진 원형의 소파 중 한군데에 앉아있었다. 보통 자신이 참여하는 일에는 항상 끼어들지 않는 그였다. - 애초에 말단이 가는 일에 윗 상사가 따라가는 일이 더 드물긴 하지만 - 평상시랑 다르게 왜인지 자신처럼 앞머리를 까 세운 머리에 게슴츠레한 눈으로 - 원형 소파 앞에 있는 원형 탁자에 이런저런 술병이나 칵테일 잔들을 늘어놓은 채로 그는 붉은 색의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이상한 모습이었다. 취하기라도 했나? 그런 의문을 품었다. 쉬이 헛것이라도 보는 건가 생각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옮겨 그 앞으로 가 멍청하게 서 있었다. 나 취했나? 아니 취하진 않았다. 오히려 멀쩡했다.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다 보일 정도였다. 세상은 흔들리지 않았고 다리 또한 무겁지 않았다. 모든게 제 정신이었다. 헛것이 아니란 걸 알자 금세 그의 앞까지 온 자신이 무안해졌다. 그냥 인사만 하러 왔다고 하면 될려나. 인사를 건네기 위해 그냥 라이터가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빈 칵테일 잔을 으쓱 들어보였다. 왠지 그의 눈이 크게 떠지며 마시던 칵테일 잔을 바닥으로 떨어트린 채 그가 일어났다. 바닥에서 깨진 칵테일 잔 소리는 금세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묻혀 주위 몇몇 사람이 바라보긴 했어도 다시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그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가 왜, 하는 말을 함과 동시에 내게 손을 뻗으려다가 다시 물리는 것이 보였다. 술에 가득 취한건지 손을 물리곤 그는 다시 소파로 눕듯 쓰러졌다. 평상시와 답지 않은 그의 모습에 진짜 많이 취했나, 이상한 생각이 들며 훤히 드러낸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뭐하는 짓이야!”
그가 다가온 손을 쳐내며 뜬 게슴츠레한 눈을 바라보았다. 당혹감이라고 해야할까, 그의 눈에는 그런 감정들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행동을 보자 그가 오소마츠가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토도마츠? 하물며 그는 토도마츠도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목소리였고 얼핏 보이는 모습은 제 형제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청 빼다박은 얼굴에 스스로는 입술을 꾹 깨물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작자의 눈과 똑같은 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스스로도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눈에도 비치는지 그는 누운 상체를 일으켜 소파에 다시 걸치듯 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래, 오소마츠가 이런데 올 리가 없었다. 허망함에 그 상태 그대로 - 그가 손을 쳐낸 그 상태 그대로 - 털썩 소파에 앉았다. 민간인인가? 아님 상대조직? 오소마츠에 대한 생각과 다른 여러 감정이 섞여 제대로된 사고가 불가능했다. 취한것도 아닌데 그랬다. 오소마츠와 꼭 닮은 모습에 그저 멀뚱히 바라보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자니 저쪽에서 놀란 눈으로 내 손목을 잡아왔다. 잡힌 곳에서 바스락거리는 옷 소리가 들려왔다. 잡아당기는 행동에 힘없이 가만히 있던 나는 그쪽으로 끌려가는 것밖에 되지않았다.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에 진짜 닮았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한 채,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아직도 목에 맴도는 알코올 향이 다시 타고 코로 넘어왔다. 고개를 한번 기울여 보곤 닮았네요, 우리 하고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중얼거리자 그가 시선을 한번 피하더니 다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게 느껴졌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참으로 기묘하다는 생각을 하곤 테이블 위에 있는 아무 칵테일 잔이나 하나 집어 들어 목으로 넘겼다. 기묘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술이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영 제정신으로 다니지 못할 것 같다. 무엇이라도 용기를 내 아무말이나 해봐야했다. 혹시 오소마츠가 장난치는건 아니느냐, 든 뭐든 술기운이란 이름의 용기가 필요했다.
“ ...녹지, 않아? ”
의미 모를 말에 고개를 다시 반대편으로 기울이자 놈이 갑자기 그럴 리가 없어, 라며 눈을 가늘게 뜨더니 노려보았다. 영문 모를 시선에,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 그래 정확힌 반짝이는 색들의 스포트라이트를 쫓고있었다, 굉장히 의미 없는 일이란걸 아는데도 -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에 슬슬 가자, 는 말이 들리자 목에 걸린 초커를 풀어 손에 쥐었다. 꽤나 꽉 조이고 있었던 건지 목이 가려웠다. 어찌됐던 이 사람이 오소마츠가 아니었다면 할 일은 간단했다. 민간인이든, 아님 다른 조직이란 것 아닌가 - 결국은 민간인이더라도 타 조직과 관련 있는 사람이란건 확실했지만 - 다만 그와 너무 똑같이 닮은 얼굴에, 쵸로마츠 스스로는 숨쉬는 게 여간 거북했다. 평소같이 그냥 마음껏 숨 쉬면 될 노릇이거늘 자신이 스스로도 날숨을 느리거나 약하게 내 뱉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았다. 죽이기를 망설일 필요는 없는데. 멍청하긴! 시선을 다시 그 쪽으로 돌리곤 여전히 자신을 째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여태껏 편히 내쉬지 못한 숨을 하, 하고 뱉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끝났다고 생각했더니 별안간 멱살을 잡혀 그 쪽으로 끌어당겨졌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갑작스레 겹쳐오는 입술에 - 솔직히 이렇게 되면 자신이 훨씬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 본능적으로 숨을 참았다. 글쎄, 그러니까 그냥 그 입에 날숨을 불어넣으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 넘어오는 혀와 타액에선 칵테일의 진한 보드카 맛이 났다. 그 외에는 별안간 다른 건 없었다. 자유로운 손과 발로 그를 몇 번 세게 퍽퍽 두드렸지만 도통 멱살을 잡은 손을 풀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숨을 쉬지 못해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윽윽, 하는 소리만을 계속 내뱉은 채로 그 어깨를 잡아 옷을 손톱으로 뜯다시피 움켜쥐었다. 발은 계속 바닥을 향해 헛발질을 했다. 숨을 못 쉰다는거, 이렇게 괴로운 거였나.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며 결국 제 안으로 들어온 혀를 이빨로 깨물어버리고 나서야 그가 괴로운 낯짝을 하곤 혀에서 나는 피를 바닥에 뱉으며 떨어졌다.
괴로웠다. 목을 움켜잡고 는 바닥을 향해 하악, 하며 숨을 크게 몰아쉬자 그제서야 생각난게 있었다. 다시금 목을 더듬자 초커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놀란 눈을 한 채로 앞의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마찬가지로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놀란 눈을 한 건 마찬가지였다.
독이 통하지 않는다.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능력이 없어진건가? 모르겠다. 이유를 모르는 사실에 아까 그가 했던 것처럼 그의 멱살을 잡아 다시끔 입을 맞췄다. 숨을 멈추는 생각따위 하지 않았다.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머금고 있던 숨을 그의 입 안 가장 깊숙한 곳에 보낼 것처럼 그와 숨을 교환했다. 당황한 그가 아까의 내 모습처럼 나를 주먹으로 쳐댔으나 그를 놓으려는 생각 따윈 애초에 하지 않았다. 주위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다른 동료들은 격전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서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이 내 독으로 인해 죽어가는 신호로는 들리진 않았다.
키스, 실질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이것만큼 사람을 확실히 죽이는 수단은 없었다. 숨의 교환이란건 결국 내가 가진 짙은 초록의 독을 그 사람 육체 안에 직접적으로 넣는다는 것을 의미했고, 나 자신도 스스로 몇 번 이용해본 적이 있었다. 입이란건 사람 몸 깊숙한데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 목숨 하나 건지는데 입 한번이라는건 그렇게 파격적인 것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놈이 내 혀를 씹어버리자 그제서야 인상을 쓰며 떨어졌고 입가에 배어나오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통하지 않는다. 독이 통하지 않았다. 이레귤러? 무효화 능력자? 갖은 생각을 했지만 도통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독이 통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불리한건 당연했다. 반쯤 흘러내린 코트를 다시 어깨에 걸치고 황급히 일어났다.
다른 동료들이 처리해줄 것이다. 입안 가득 맴도는 알코올 맛에 젠장,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소파를 벗어났다. 가다가 테이블을 건드린 것인지 쏟아지는 병들에, 바닥으로 퍼져가는 액체들의 소리가 엄청 크게 울렸다. 초커를 놓고왔다는 사실이 생각나자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나가려던 차에 뒤를 한번 돌아보았다. 녀석도 따라 벗어나 나를 향해 뛰어오는게 보였다. 젠장! 초커가 대수냐 지금! 코트를 오른손으로 잡고 뛰려던 차에 어디서 쏟은것인지 모를 - 아마 높은확률로 아까 내가 쏟은 거겠지만 - 보드카를 밟았고, 매끈한 회장의 돌 바닥은 나를 그렇게 쉽게 달아나게 두려 하지 않은건지 오늘 열심히 광을 낸 구두를 고꾸라트려 - 정확히는 나다 - 넘어지게 두었다. 정말 재수가 없으려는 날은 뭐든 재수가 없다더니. 그 돌바닥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있자니 대뜸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 어두운 시야에서 기억나는 것은 녀석이 날 부르는 목소리였고 잡아 끌어 당기는 그 느낌만이 계속 들었다. 밀어내야하는데. 이미 세게 머리를 부딪혀 행동 제어의 중추가 되는 뇌는 술에 꼴은것처럼 각 사지에 연락을 넣지 않았고. 그렇게 ‘미약한 뇌진탕’이라는 걸 처음 경험하는구나- 따위의 헛생각을 하면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