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치카라,이치쵸로]Hollow 2
3.
질질 끌고 오다시피 한 남자를 침대 밑에 바로 놔둔 채,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곤 자신은 침대로 가 그 위로 쏟아지듯이 누웠다. 피곤했다. 귀에 꼽아둔 무전기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총격전을 하던 그 회장을 빠져나온다고 귀로 누군가가 말하긴 했지만, 결국 어딘가에 집중하면 다른 곳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 자체덕분에 그것이 무슨 전달사항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카라마츠의 목소리였을까. 무슨 연회니 무어니, 중요한 계약들을 앞둔 사람들을 초대한답시고 별 상관없는 민간인을 몇 명 초대했다는 카라마츠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함정, 이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는 아직도 생각하면 소름이 돋았다. 연회랍시고 무슨 중세풍의 재즈가 흘러나오는 그런 곳을 생각했던 자신 스스로에게 욕을 던졌다. 멍청이, 바보, 구석기인? 클럽 같은 형태에 스스로 혀를 쯧, 차고 머리를 흐트러 버릴까, 하고 생각하다가 귓가에 들리는 그게 더 멋있으니 괜찮아. 하는 목소리에 이마를 드러내듯이 앞머리를 올린 형태는 남자를 붙들고 마구 뛰어온 덕분인지 몇 가닥이 흐트러져 내려와 있었다. 이 상태로 잘까, 그 어떤 임무를 나갔어도 지금처럼 피곤한 일은 없었다. 육체적으로 피곤하진 않았는데, 그래, 그냥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이런 일도 많이 없는데. 중얼거리곤 내려온 앞머리를 손으로 올리곤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몸을 돌려 놈이 뻗어있는 곳으로 몸을 돌리니 흐트러진 옷 주머니에서 아까 쟁여둔 놈의 초커가 툭하니 그의 옆에 떨어졌다. 마치 초커가 제 주인을 찾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떨어진 그 모습에 푸흐흐,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목소리에 놈이 으윽 하고 작게 신음하며 움직였지만 그 이외 별다른 행동은 없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그저 빤히 바라봤다. 많이 닮았다. 누구냐고 하면 제 보스인, 제 형제 카라마츠.
이 녀석 스스로도 그런 멍청한 소리를 했었다. 우리 많이 닮았죠? 하는 그 얼빠진 목소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순간 카라마츠, 제 형이 여기 왔다는 생각에 덜컥 겁을 먹고 몸을 살짝 움츠렸다 그런 바보 같은 질문에 다시 몸을 조금 폈었다. 제 형은 그런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뿐더러, 이 사람같이 그렇게 전체적으로 쳐져있는 인상이 아니었다. 그래 카라마츠는 말하자면 ‘쳐짐을 연기하는’ 사람이었다. 연기에 능했다 그는. 유순함을 연기하기도 하고 얼빠짐을 연기하기도 했다. 완벽함을 연기하기도 했다. 아니 실은 자신 스스로도 그가 일부러 그러는지, 아님 본래 그런 것인지는 자세히 모른다. 일 평생을 같이 살아왔는데도 그것만큼은 몰랐다.
눈을 감으니 카라마츠의 얼굴이 앞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자신과는 달리 남자답다고 할 수 있는 진한 눈썹은 저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고, 입은 호선을 그려주고 있었다. 아- 그래 이건 그 회장에 가기 전의 일이었다. 뇌 속에서 멋대로 재생되는 영상은 멈출 수가 없었다.
키스할래?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잠이 쏟아졌다. 심장은 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크게 울리고있었다. 마치 물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나른함이 나를 뒤덮었고, 심장소리만이 물이 보글대는 소리와 함께 귀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잡아 나는 그때 무슨 표정을 지었던걸까. 그는 항상 그가 앉아있는 의자에 몸을 기대듯 앉아있었고, 나는 그 앞에 서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형보다 조금 긴 머리카락은 아래를 향해 전부 힘없이 늘어져있어서, 아마 내 표정이 그에게 다 드러났던 것으로 생각한다.
제 형인 카라마츠는 저에게 상냥한 사람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맡길 때는 등을 두드려주며 너를 믿는다는 말을 해주거나 아님 말없이 저를 껴안아주었다. 실로 그는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말없이 스스로를 내주는 사람이었고, 그런 점이 좋기도 했지만 그런 점이 싫기도 했다. 요컨대 그가 말하는 키스도 그 안에는 포함되어있는 것이다. 서술했듯 자신은 카라마츠의 그런 연기가 사실인지 아닌지-그러니까 저것이 조직을 위해서, 내가 좀 더 수월히 일할 수 있게끔 이용하는 것인지, 아님 내가 그러하듯이 날 사랑하기에 하는 행동인지는 -모를 노릇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싫었다. 좋다고 하는 점이 있다면 그저 애정을 갈구하면 원하는대로 그와 닿을 수 있다는 점이었고, 그렇지만 스스로는 절대 카라마츠에게 먼저 관심받고 싶다느니, 사랑받고 싶다느니의 언급은 없었다. 입안에 맴도는 알코올을 혀로 한번 굴리곤 목 너머로 삼켰다. 쌉쌀한 맛과 동시에 찡하고 울리는 맛이 목 너머로 느껴졌다. 제 독은 제 형에게 쓰기에는 너무 독한 것이다. 제 멋대로 조절할 수 있는 독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살아온 이십몇년간 독에 대한 공포는 언제나 항상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자신이 닿이는 곳은 녹았으며, 자신과 함께한 것들은 언제나 부식되기 마련. 그런 세상을 그 동안 봐왔기에, 이제 독과 이치마츠라는 이름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되었기에 항상 몸을 움크리고 다녔다. 자신의 죽음보다는 주위의 죽음이 비할 수도 없이 자신에겐 슬펐다.
특히나 카라마츠, 카라마츠가 독으로 인해 목을 졸라지게 된다면 자신은 거의 죽은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독백했다. 그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항상 위험한 일은 도맡아서 하려는 그에게, 등을 항상 밀어주는 그를 자신이 품고 있는 한 마리의 독사가 칭칭 감아 죽이는 꿈을 꾼다.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계속 되는 꿈에 이치마츠 스스로는 인정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싶어?’
제 안의 독사가 꿈틀거리며 자신과 눈을 마주쳐왔다.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찬찬히 끄덕이자 독사는 혀를 낼름거리며 웃었다.
‘넌 불가능해, 네가 어떤 존재인지 너는 알잖아?’
스스로 입을 막고, 이치마츠는 제 안에 있는 독사의 존재를 수긍했다. 제 부모님의 명과 주위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비틀어버린 독사였기에, 그것은 트라우마인 것처럼 이치마츠 그 속에 깊이 남아 아직도 사랑을 받고 싶다는 감정이란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원한다면 언제든 카라마츠와 닿고, 사랑할 수 있었지만 이치마츠는 스스로 그러지 않았다. 그것이 진정으로 본인이 바라는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알았고, 언젠가는 내가 누군가의 목을 조르게 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사가 자신의 팔을 감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눈 위로 까칠한 뱀 비늘이 스쳐지나가는 통에 눈을 뜰 수 없이 그 상태 그대로 깊은 잠속으로, 뱀 비늘 사이 그 깊은 어둠으로 빠져들어갔다.
맞아.
휘감고 있는 뱀에게 속삭이듯, 아니 마치 자신이 그 한 마리의 뱀이 되듯 항상 조용하며 스치는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자신이었기에. 자신의 혀 안에 기생하고 있는 한 마리 뱀. 그 뱀이란 이름의 기생충은 언젠가는 자신의 뇌를 장악하고 그 자신이 ‘이치마츠’인 채로 계속 계속, 사람을 밀어내기를 강요하고 항상 목소리를 깔며 자기 멋대로 놀리곤 했다.
트라우마는 뱀이라는 존재가 되어 항상...
진심이란 존재는 이치마츠가 되어 그 뱀에게 감겨 항상..
꿈속에서 자신이 휘감고 있는 제 스스로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휘감긴 제 자신은 이후에 툭 떨어져 제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이 되고, 끝내 팔을 뻗어 저 손을 움켜쥐는 사람의 모습은 결국
“너는 사람을 졸라 죽일 운명이니까.”
잔인한 말을 내뱉고 계속계속 내 목을 조를뿐이다.
아려오는 눈, 조여진 목은 산소뿐만 아니라 피가 통하지 않아 곧 붉어져 뜨거워지고 꿈이라고는 현실적인 고통에 입을 크게 벌려 으윽 하는 고함을 내질렀다. 묻혀야 할 소리는 공기중에 퍼져 나가 심장을 후벼파는 듯 했다. 꿈? 아니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한 고통이었다. 목을 쥐는 카라마츠의 얼굴이 하얀색으로 물들어 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고통에 순간 가위에 눌린걸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니. 손가락을 움직여 날 조르고 있는 그 팔을 잡아 뜯었다.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다시 심장을 후벼 팠다. 내목소리? 아니 이건 타인의 목소리였다. 뱀이 쉭쉭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고 오히려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매캐한 연기 냄새로 방 안이 가득 차올랐다. 담배. 이건 제가 그토록 싫어했던 - 그래서 항상 피지말라고 말을 누누이 하는 - 담배 냄새와 똑같았다.
심장을 후벼 파던 목소리는 의미 없는 비명에서 왜? 하는 말이 되어 돌아왔고, 그것이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들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본능적으로 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제 앞으로 들이밀었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일을 묵묵히 맡아왔던 자신이었다. 능력이 다른 평범한 사람 못지 않게 약한 쥬시마츠를 위해서 스스로 자처한 일이었다. 살인? 협박? 그것이 무엇이 되었는 뒤가 구린 일인 것은 확실하고. 그 도중에 자신의 신조는 총을 쏠 사람은 총에 맞을 사람뿐이라는 말이었다. 누가 한 말이었지, 그런 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랬기에 이런 상황도 익숙했고. 대처하는 것도 익숙했다. 다만 스스로가 조금 놀란 이유는 제 보스와 똑같은 얼굴이었고, 이내 그것이 카라마츠가 아니란 사실을 상기하곤 입에서 아. 하는 작은 탄식을 흘렸다.
“ 넌 누구야? ”
또렷한 목소리로 그렇게 부르자 앞의 너는 화들짝 놀라 내 얼굴에 연기를 내 뿜는 것을 멈추었다.
그랑 닮은 사람은 내 목에 감겨 있던 스스로의 손을 위로 올려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 얼굴 이곳저곳은 더듬더듬, 만져보았다.
마치 무언가가 진짜라도 되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감별사의 손짓과도 같은 손에 그저 손이 움직이는 걸 따라 눈을 흘기고, 감고 그를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는 내가 그에게 위협적으로 대고 있는 주머니 칼 따위는 신경쓰이지 않는 모양인지 그냥 눈앞의 내 존재를 그렇게 확인할 뿐이었다.
너 이름이 뭐야.
그렇게 물으니 갑자기 눈 앞에 초록빛의 매캐한 연기가 훅 끼쳐왔다.
마치 무언가를 태우고 난 - 그러니까 양파를 깎을 때의 그런 매콤함 - 따끔한 냄새가 눈 이며 코, 입으로 훅 끼쳐 들어오기에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칼을 쥔 손을 내려놓고 손으로 휙, 부채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연기는 제 것도, 제3자의 것도 아닌 눈 앞의 이녀석에게서 비롯된 것임은 확실했다.
“ ...쵸로마츠.”
제 능력이 통하지 않던 것과 동시에 방안을 메우고 있던 초록빛이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지는 낌새, 그리고 타는 듯한 냄새들이 제 신경을 박박 긁고 있었다. 다만 그건 머리가 아릿하는 그런 통증이 아니라 그저 드문드문 누군가가 제 머리를 간질이는 그런 작은 통증. 그러니까 소위 말하자면 너는.
“ 독 능력자구나? ”
맞지? 이를 드러내며 뱀처럼 소리 내며 웃자 상대는 스산한 기분이 들었는지 몸을 움츠렸다.
손을 떼는 그 자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얼굴이 다가오자 보이는 건 목에 있는 붉게 부어오른듯한 상처. 아까 그 초커가 제어하는 도구인거야? 낮게 그의 귓가에 소곤소곤 말하니 녀석이 불쾌하단 듯 손목에 힘을 주었다. 이런, 꽤나 힘이 강했다. 저는 총이나 이런저런 도구를 다루는데엔 능했지만 악력으로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보란 듯이 녀석의 귀를 혀로 한번 핥아내리니 그가 숨을 삼키며 손의 바르작댐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암, 그쯤되면 이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어디로의 도망이냐고? 그야 자신이 독능력자가 아니니 뭐니 하는 그런 변명을 해서 도망치는 것 말이다.
그의 귀에 보란 듯이 꽂혀있던 이어폰은 방금의 접촉으로 인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그 녹아내린 형태는 마치 촛농처럼, 보랏빛을 띄며 뚝뚝, 내 쪽으로 떨어졌고 나는 그 빛깔을 보고 아까처럼 겁을 주는 척 최대한 으스스하게 웃어보이는 수밖에 없다. 아, 제발 하느님. - 하느님을 찾는 것부터 이미 웃겼지만 - 녀석이 동요하게 해주세요.
이치마츠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민간인인가,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하고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었지만 능력자에, 수상해보이는 이어폰이니, 능력 제어 초커 등을 보아하면 민간인은 분명히 아니었다. 경찰이거나, 아님 상대조직이겠지. 쨌든 자신이 죽여야하는 상대임에는 분명했다. 다시 침대 위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는 주머니 칼을 쥐고 녀석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는 충분히 동요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말문이 막힌채로 벌려져 있는 입. - 계속 미미하지만 연기가 매캐하게 새어나와 기분이 나빴다 - 이치마츠는 누군가를 무력으로 죽이는 것보다 - 그러니까 독을 쓰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 이렇게 틈새를 파고들고 죽이는데 익숙했다.
또한 그게 그 스스로가 좋아하는 처리법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성격은 이런 고얀 성격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흥, 하며 머리채를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당겼다. 아윽, 하는 목소리가 금세 다물린 이 사이로 비집어 나왔다. 그의 눈이 감기고, 속눈썹이 파르르, 잘게 떨렸다.
카라마츠를 닮은 그 얼굴이 보기 좋은 모습으로 일그러졌다. 눈썹이 찡그려져 그건 마치 정말
카라마츠.
무언가가 잡아 당긴걸까. 이치마츠는 아까부터 가슴속에서 죽이라느니 무어니 명령하는 뱀이 정말이지 싫었다. 그대로 잡아당겨 그와 입을 맞대었다. 조금 세게 잡아당긴 탓인지 이빨과 이빨이 부딪혀 찌르르, 머리가 울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 이게 몇 번째야. 스스로도 어이없는 행동에 입꼬리가 조소하듯 올라갔다. 잡은 머리를 뜯을 듯이 당기니 고통에 그가 악, 하고 비명지르는게 느껴졌다. 놓칠까보냐. 입 안쪽으로 혀 안에 꽁꽁 감추고 있던 뱀 한 마리를 들여보냈다. 보랏빛 독액이 턱 밑으로 뚝뚝 떨어졌고, 물론 초록빛의 연기도 계속 눈 앞을 지나갔다. 아까 고통을 준 고얀 이빨도, 제 형과 비슷한 부드러운 안쪽 살도 모두 녹일 듯이.
물론 그는 당연히 녹지 않았지만.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밀어낸 덕인지 침대 맡으로 세게 부딪힌 등이 아려왔다. 조금 부어있는 자신의 입술을 이빨로 깨물었다. 조금 더 힘을 줘서 깨물면 피가 나올 것 같아. 보랏빛 피가말야. 하하. 너, 독능력자 맞잖아 역시. 그렇게 멍하니 입을 자기 소매로 벅벅 닦아내는 그를 보며 날숨과 함께 뱉어낸 말.
제 눈을 감고 스스로 미쳤어, 머릿속으로 계속 읊조리며 그에게 말도 안되는 말을 건넸다.
저기 나 이제 이런 일 지긋지긋하거든.
사랑 받지 못하는 것도, 사랑을 주어도 거절하는 것도 모든게 말야.
이제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말을 그대로 내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필터 없이 그저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그에게 전했다. 마음속에 있는 뱀이 쉭쉭거리며 견제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결국 제가 하는 말은 그에게 하는 말이자 뱀에게 하는 말이었다. 어차피 제 형제를 닮은 그 곱상한 얼굴로 한번만 말야.
나를 사랑해줘.
고개를 왼쪽 어깨로 떨어트리곤 눈을 가늘게 떠 저완 달리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그를 향해 웃어주었다. 마치 앙탈을 부리듯이, 교태를 부리듯이. 양팔을 벌려 제 형제와는 달리 조금 여윈 몸을 끌어안았다.
‘미쳤구나, 이치마츠’
뱀이 자신을 매도하는 것이 느껴졌다. 애정에 미쳐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귀로 갈라져 들어왔다. 뭐 어때. 기회는 한 번 뿐인걸. 뱀이 쵸로마츠를 졸라 죽이지 못하고 그저 배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너는 이 자에겐 손대지 못하잖아? 너는 이 사람을 졸라 죽일 수 없어. 죽인다면
내 손으로나 가능하겠지. 제 손으로, 뱀에 의해 원하지 않던 상황에 졸라 죽여지는 것이 아닌 제 손으로 졸라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차피 사랑하는 사람을 졸라 죽일 운명인 제가 사랑해도 괜찮은 사람.
제 안에 있는 뱀에게 중지 손가락을 올렸다.
“ 조직같은거 엿이나 먹으라지 ”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너라면 내가 사랑해도 괜찮고, 네가 사랑해줘도 괜찮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마음에 하하.. 하며 헛웃음을 뱉어내곤 다시 속삭였다.
밤은 길잖아, 쵸로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