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몽롱해지며 눈이 밝아지는게 느껴졌다.
발목과 이어진 노즐을 보고 깊게 한숨을 들이 마셨다가, 오필리어는 칼을 꺼내 노즐에 힘들 줬다.
깡- 하는 헛디디는 소리가 났고, 칼은 엇나가 오필리어의 발목을 갈랐다.
피가, 땅으로 낙하하고, 오필리어는 망연하게 그은 발목에서 피가 돋아나는 걸 바라봤다.
케이오시움 수치가 증가하고 있다는 알림이, 청명하게 공기를 갈랐다.
아아, 자네 능력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라며 디거너츠는 얼머부리며 어지러이 어지럽혀진 실험실 내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고는 무언가를 찾아서 여기저기로 왔다갔다했을 뿐이었다.
오필리어는 디거너츠가 타준 커피를 손에 들고 그냥 망연히 소파 위에 앉아만 있었다.
"소개시켜줄 사람? 그런말은 듣지 못했어요 디거너츠."
디거너츠는 하던일을 멈추고, 무언가 보물이라도 발견한 마냥 소중히 종이 뭉치들을 끌어안더니, 오필리어 앞으로 와서 거칠게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아까의 반응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들에, 오필리어는 모순됨을 느끼고 종이뭉치들을 집어서 넘겼다.
".....이게 뭡니까"
케이오시움 반응 연구, 케이오시움의 가능성 연구, 이계, 이계의 조사 등 온갖 케이오시움에 관련된 일지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걸 본 오필리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레지먼트인 자신의 입장에서, 케이오시움과 소용돌이는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엔지니어들은, 그래 그들은 조금이나마 학술적 연구가치로라도 보지, 자신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자신들의 동료, 스승, 지금의 돌아갈 곳을 황폐화시킨 것.
그런 가치만이 오필리어에게 깊게 뿌리 박고있을 뿐이었다.
"케이오시움의 가능성, 그 존재에 관한 연구일세. 게 중에는 폐기된것도 몇개 있지."
오필리어는 구석에 위험 이라는 표식과 폐기, 라는 붉은 표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보여주는 의도는 뭔가요"
일부러 기분나쁘단 티를 내며, 테이블 위에 거칠게 던졌다.
마음같아서는 그냥 찢어서 버리고 싶었다. 이 자의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걸 강요한다던것이나, 후에 콜벳의 전원도 이자가 강제로 꺼버렸단것을 안 후로는 더더욱.
"너는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야."
어느새 한쪽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가 웃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흰 가운을 입고, 굽이 없는 낮은 슈즈를 신은 소소한 차림은, 그녀가 엔지니어란 것을 보여주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머리는, 잘게 흔들렸고, 그녀가 옆으로 다가와 소파에 걸터 앉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손이, 자신의 턱을 잡고 자신을 보게끔 만들었다.
알 수 없다는 진담이, 오필리어의 눈에 서렸다.
"믿지 못하는 표정이네"
그녀는 뭐 좋아, 라며 손을 떼고는 몸을 굽혀 오필리어가 던진 연구자료를 손으로 잡아 넘겨 읽었다.
"연구 목표가 같은 자일세, ....자네의 능력에 대한 연구도 도울꺼고"
"당신이 지향하는 연구 목표가 뭐죠?"
오필리어는 다리를 꼬며,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부츠에 넣어둔 스틸레토를 꺼낼 심산이었다. 디거너츠는 곤란하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었고, 여자가 흘린 연구지를 줍기위해 몸을 더 숙였다.
"이런게 필요해?"
그리고 여자가 꺼내든 것은 자신의 부츠에 두었던 스틸레토였다.
"......연구지를 줍는게 아니었나"
여자는 하긴- 나라도 당신같은 수상쩍은 사람이 데려가면 들고 올것 같아- 라며 스틸레토를 디거너츠에게 던졌다. 디거너츠는 기분 나쁘단 일색을 표하고는, 자신의 콧수염을 정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필리어, 너에겐 이런것따윈 필요치 않아"
여자가 다시금 오필리어의 고개를 돌리고, 손을 마주잡아 왔다.
약간 로션냄새가 풍기는 여자의 얼굴이 다가올수록, 오필리어는 불쾌감만 늘어갔다.
여자는 오필리어의 손에서 손을 떼더니, 스틸레토를 땅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방금까지 자신의 손을 잡고있던 손이었다. 스틸레토를 떨어트린 손은 오필리어의 목을 잡아 끌었고,
여자는 오필리어의 귀에 입을 대고는 속삭였다
"어때? 정말로 필요하지 않지?"
손에 딱딱한 이물감이 다시 느껴졌다.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꽉 붙잡고, 오필리어는 여자를 향해 내리쳤다.
여자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자신을 밀치고 뒤로 떨어져버렸고, 손에 쥐어진 익숙한 날붙이는 여자의 팔을 살짝 베었다.
자신이 레이피어를 들고 싸울때 항상 들던, 망고슈.
어째서 그것이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지 이해하지 못한상태로, 오필리어는 망고슈를 꽉 쥐었다.
본디 왼손으로 사용하던것이라 오른손으로 사용하기엔 익숙하지 않겠지.
망고슈는 잡용 단검이었다, 그야 그럴께 자신이 레이피어를 사용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고, 그것은 고전적인 방법이었기에
아무리 사용법을 안다고 해도 스틸레토처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아담, 이브, 너희였다면, 더 잘 다룰 수 있었을까'
오필리어는 소파에서 일어나, 출입구쪽은 곁눈질 했다.
케이오시움과 관련된 연구, 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사람들이 거론하는 것을 자신은 이해하지 못했다.
성기사의 힘? 그런것은 그냥 케이오시움에 오염되어서 나타나는 것 아닌가. 자신은 그저 묵묵히 레지먼트 내에서 임무를 다하다가 죽으면 그만이었다.
코어 괴물에게 비참하게 죽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케이오시움이라니. 오염되었다니,
자신에게 있어선 굴드 병에 걸린것 마냥 끔찍한 말이었다.
"성기사의 힘은 케이오시움에 의해 얻은 특수한 지각력에 의한 것이지."
디거너츠가, 여성의 상처를 보더니, 무미건조하게 방 한쪽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응급 의료 킷트를 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라, 하마터면 긴장을 풀 뻔 했다.
"하지만 오필리어, 자네의 것은 약간 형질이 달라"
디거너츠는 손가락으로 여성을 가르키면서 말했다.
"저 미치광이 여성의 말은 잊게, 나는 그저 네 힘에 대한 것을 알려주려고 했을 뿐이야."
여자가 붕대를 감아주려던 디거너츠의 손을 쳐내고는, 필요없어, 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치광이라고 불린게 싫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야망이 꺾여서? 아니, 혹은 둘다 연기일지도 모른다.
디거너츠가 자신의 오른손을 부드럽게 밑으로 내렸다.
겨누고 있던 망고슈를 밑으로 향하게끔 했다.
뭣한다면 찌르면 된다
망고슈는 비록 약하나 찌른다면 제 값어치는 할 수 있을것이다.
디거너츠를 위 아래로 살피면서, 대강의 명치를 겉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슬쩍 조준해놓았다.
여자가 베인 곳을 손으로 집고 일어났다.
여자가 휘청이는게 느껴졌다, 살짝 베였어도 검선은 컸다, 크게 베인 것은 분명했다.
"미래의 가능성을 엿보는 성기사의 힘, 하지만 넌 그 가능성을 불러들여올 수 있지."
여자가 팔을 조금 높이 올리고는, 피를 멎게 하기 위해 애썼다.
디거너츠가 바라보자, 여자는 피를 멈추게 하고 감아야 할 것 아니야? 찝찝하잖아, 라며 시비조로 디거너츠를 밀어붙였다.
성기사의 힘에 대한 것은 오필리어는 관심이 없었다.
이 자들이 무슨 말로 떠들어도 그건 자신이 듣지 않을것이다.
"케이오시움으로 얻었다면 그건 그냥 쓰레기일 뿐이야, 그게 얼마나 잘났든."
"네가 그 능력이 없다면 살아 있지도 못했을텐데"
"코어 괴물에게 그러허게 쉽사리 당하지는 않아"
여자가 피가 아까보다는 멎은게 확인되자, 부러 발소리를 내며 오필리어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필리어는 짧은 망고슈를 양손으로 잡고는 뒤로물러났다.
디거너츠가 이런, 이라고 읊조리며 양 손을 들고 피하는게 보였다.
여자가 아까 처럼 자신을 시험하기위해 다가올 목적이라면 가차없이 찌를 심산이었다
오필리어는 생각을 정리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사이에 여자가 자신에게 달려들었고, 오필리어는 당황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여자의 명치를 향해 칼을 내밀었다.
진작 그가 당황했던 부분은, 여자가 스틸레토를 시계방향으로 돌려 망고슈를 쳐낸 것이었다.
스틸레토를 쥐고 있었다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애초에 방어용으로만 사용하면 망고슈와 스틸레토가 부딪혀서 이기는 것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스틸레토의 차가운 촉감이 옆구리를 갈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오필리어는 얼굴에 의아함을 띄우고 밑으로 무너져내렸다.
"오필리어 당신의 결점은 너무 완벽하다는거야"
흐려져 가는 모습 속에서, 손에 질척한 액체들이 엉겨붙는게 느껴졌다.
디거너츠가, 망연자실하게 나를 쳐다보는 그 눈동자에선, 아까 빼들었던 스틸레토의 형상을 그리고 있었다.
자신의 손 때가 묻던 것에 배신당할 줄이야,
닿지도 않을 원망을 보내고는, 여자가 묵묵히 자신을 거두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그게 마지막으로 자신이 본 것,
그 이후로는 그저 남색의 공간에 재를 뿌려놓은 듯한 이 공간에서만 자신은 체류해 있었다.
발목과 손목에는 그저 검은색의 링 손잡이 모양의 철물질이 깊게 박혀있었고, 그 안과 바깥까지 길게 연결된 노즈만이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릴 뿐,
그리고 가끔씩 방 구석 어딘가에서 황량이 방의 상태를 알려주는 메세지만 뜰 뿐.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방과 연결된 문은 한개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세면장이었을 뿐,
식사마저도 나오지 않는 가혹한 공간에 그저 자신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배를 잡고 쓰러진 산만한 모습 후에는, 항상 다음번에 눈을 뜨면 자신은 청결한 모습으로, 여전히 의자에 앉아 묵묵히 재를 뿌려놓은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 여자가 필히 어딘가로 데려다 놓은 것이겠지,
빛이라고는 파란색 점조등 밖에 없는 공간에,
악질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그저 이상한 노즈만을 매달아 놓고 가만히 놔두다니.
그 이외에 레지먼트에 관련된 것이나, 하물며 자신의 아버지까지도 폭넓게 생각되었다.
돌아갈 곳을 생각하니 더욱 분노가 치미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능력에 대한 적개심도.
디거너츠를 따라 나서기 전에, 혹시 몰라 아담과 이브에게 신신당부 해둔 것이 떠올랐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믿으면 안된다는 신조를 가지고 혹여나 한 말이었다.
그 말을 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아직 그렇게 어린 아이들에게 지금 상황을 맡겨둔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나올 수 있다는 가정하로 그냥 말해 둔 것이었는데.
거기서 사람을 소개시켜준다던가, 스틸레토를 들킨다던가, 빼앗겨서 찔린다던가 하는 것은 전해 예상범위 내에 들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에 대해 과만하지 말자, 가 새 교훈인가.
오필리어는 씁쓸하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일단 중요하것은 노즈라고 판단하여, 오필리어는 떠올렸다.
가능성을 불려들어올 수 있다고 했던 여자의 말을.
손으로 노즈를 잡아 끊으려고 해봐도 단단한 노즈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필리어는 가능성을 생각했다.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라고 믿었지만, 그는 눈을 감았다.
'가능성' 이었다. 이미 결정되거나 아니면 예전에 존재한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에게 '희망'의 동기가 되는 '가능성' 오로지 그것이면 충분했다.
오필리어는 생각했다. 이 어딘가에는, 자신이 칼을 소지하고 있을 상황이있지 않았을까, 지금 임무 중이었다면, 사막의 황량 벌판이나, 빙하지대의 얼음 위. 임무 중이 아니었다면, 훈련생들이랑 훈련중이거나.
그의 손에 아밍소드가 들리기 전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로 그는 계속 아밍소드 한자루로 계속해서 노즐을 잘라왔다.
그렇지만 끊기지 않는 견고한 노즐은 끊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즐이 끊긴다는 선택지는 여기서밖에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노즐을 발과 팔에 달고있는 자신은, 여기에서밖에 없으니까. 여기에서만의 가능성인 것이다.
총이나 칼로 공간을 찢으려고 해봐도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도 재처럼 뿌려진 공간은 꽤나 물러보였다만은, 나름 견고한 철제로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파란 점조등과, 알림같은 거슬리는 것들을 끊임없이 부숴왔음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쓰러지고 난 후 눈을 떠 보면 항상 제가 언제 그랬냐는 마냥 정상으로 모두 돌려져 있기 일쑤였다. 자신도 그렇고, 이 이질적인 공간도 그렇고.
남아 있다면 약간의 흉터들일뿐 - 그러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출혈에 의해 쓰러지고,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할 때,
눈을 뜨면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이 파란 점조등이 깜박거릴 것 같았지만.
얇은 눈꺼풀 사이로 흰 우로들이 쏟아져서는 여기가 자신이 항상 에상하고 있던 곳이 아님을짐작케 했다.
의식을 잃기 전까지 손에 들고 있던 아밍소드를 더듬어서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른 곳으로 나아온 것이다.
아담과 이브인가, 그렇지만 그 둘의 발걸음이라고 치기에는 너무 단순했고, 이브의 발걸음이라기엔 무겁고, 아담의 발걸음이라기엔 가벼운 소리.
주먹이라도 쓸 심산으로 조심히 눈을 뜨니, 위에는 회색 달이 홀로 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남색의 빛깔로 빛나고 있었다. 같은 남색이라도, 방의 남색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남색.
"눈을 뜬걸까?"
머리 맡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귀를 거슬리게 했다.
자신을 찌른, 자신은 가두어놓은 그 여자다.
이미 한 번 들어본 신경을 긁는 목소리는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네가 그런 꼬맹이들에게 말해두었을 줄이야."
오필리어는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확인했다.
여자는 기계마를 부러 보란듯이 고삐를 잡고 끌어당기고 있었고, 기계마와 자신이 지금 누워있는 환자 호송용으로 보이는 듯한 것.-자신은 처음 보는 물건이라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밖에 없다. 그저 시트 밑엔 자질구레한 장비들이 늘어져 있고 장비 옆에는 기형학 같은 장식이 달린 바퀴들이 달려서 기계마가 이끄는대로 따라 돌아갈 뿐이었다.
여자와 기계마를 확인하려면, 오필리어는 몸을 돌려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아직 아물지 않은 발목에 피가 솟구쳤다. 아직 발목이 아물지 않은 걸로 보아하니, 그때보단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던걸까.
"꼬맹이들....?"
"그런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미리 그런짓을 벌일 줄이야. 생각보다 오필리어 너는 감이란게 좋을지도 몰라."
여자는 아니, 아니지 하고 한꺼서 웃어보이더만 감이 아니라 예상이라고 해야하나? 라고 정정했다.
사막과 숲의 중간 지점, 그리고 여자가 향하는 쪽에는 자그마한 비행정이 점처럼 보였다.
아니 숲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조금은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나있는 벌판이라고 하는게 나을까, 아마 소용돌이에 의해 사막화 된 숲의 잔재일 것이다.
작은 나무들은 여자와 자신이 걷고있는 반대 방향으로만 풀이 듬성듬성 나있었고, -그러니까 결론은 자신들은 사막 쪽을 향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자신의 앞에는 하얀 시멘트의 느낌이 풍기는 큰 건물이 붉은빛으로 죽은 호수 옆에 은은히 비추이고 있었다. 호수는 사막으로 가면 갈수록 작아져, 모래가 섞여 혼탁해졌다.
오필리어는 발로 모래를 짚었다. 모래가 갈라지며 오필리어의 발을 따라 한갈래의 길을 냈다.
길이 끊어졌을때즘, 기계마가 기이한 울음소리를 냈고, 여자는 그에 응답하듯 뒤로 돌았다.
"허튼 짓 하지마 오필리어."
"아담과 이브가 온건가?"
여자는 응답하지 않고, 조용히 옆에서 칼을 한자루 뽑아들었다.
피가 끝에 묻어있고, 검날이 약간 빠진걸로 보아선 자신이 쓰던 아밍소드였다.
"네가 그 아이들이 여기까지 올것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니."
오필리어는 가능성이라는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발목에서 나온 약간의 피가, 하얀모래를 검은색으로 변질 되게 하고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다시 레지먼트로 돌아갈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
물론 저 비행정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미치광이 여자가 무슨 함정을 심어놨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자신이 택하는 답은 간단했다. 가능성을 부르는 것.
그 감금된 공간이면 모를까, 이 사막같은 - 쓸데없이 아름답기만 한 - 드넓은 공간에서는 어디든지 가능했다. 판데모니움으로 갈 수도 있었고, 운이 좋다면 레지먼트로 바로 갈 수도 있었고. 적어도 한정된 공간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의 발때가 묻어있는 곳이라면 가능성은 넓어진다. 그 좁은 공간에서 오필리어가 얻은 결과였다.
끔찍한 힘이었다. 성기사? 성기사라는 타이틀은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케이오시움이 전락해 타락해버린 자라면 모를까. 오필리어는 힘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널 죽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겠어."
"네가 있을 곳은 내 옆이야, 오필리어"
여자는 허벅지에 고정해두었던 검을 빼어들고는 팔을 벌렸다. 눈의 초점이 나간것이 정말 미치광이 같군, 오필리어는 속으로 여자의 욕을 하며 반박했다.
"네가 있어야할 곳이 그럼 또 어디있겠어? 아버지에게도, 레지먼트에게서도 거부당한 네가?"
"뭐....?"
오필리어는 여자의 행동을 추측하던것을 멈추었다. 끝의 말이 거슬렸던 것이다.
눈이 크게 떠지고, 호흡이 거세졌다.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니라고 빌며.
"디거너츠에게 못들었던거야? 레지먼트에게서 널 데려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그럼 다시 디거너츠에게.....아참 불타 죽었지 아하하하하"
오필리어는 깊게 무너졌다 가슴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철 없는 어린아이가 검은색 크레파스를 들고 온데간데 모두 먹칠을 한 것마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다 까매져서 마치 탄것같은 기분이었다.
돌아갈 곳이, 또 없어졌다.
오필리어는 뒤를 돌아 타고있는 석조색의 건물을 바라봤다.
아니 이제 석조색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물들었다. 검게 물들 곳의 끝자락만 주황색과 노랏빛으로 물들어가면서 점점 침식해 건물을 부서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마치 옛날과 같아.
눈 앞에 집이 타오르는 것과 똑같은 잔상이 저멀리 있는 건물과 겹쳐보였다.
마치 저 안에서 케이티아가, 불이 붙은 몸으로 거울을 안고 주저앉아 있을 것만 같은 환상에, 자칫하면 건물쪽으로 달려갈뻔한 충동을 느꼈다.
오필리어에게 돌아갈 곳을 잃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그냥 그쪽에서 자신을 그냥 쳐낸것이었다. 원하던 대상이 분개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금, 오필리어는 쌓여있는 충동적인 분노를 어디에 삭혀야 할지, 머릿속이 혼잡해졌다.
정리한 결과는, 그래 결국 저 여자때문이라는 알량한 결과였다.
여자가 레지먼트쪽에게 권한 것일까, 아니면 레지먼트 쪽에서 먼저 말한것일까. 그런 사실 여부를 생각지도 않고, 지금 원망할 대상을 찾지 않으면 자신은 미칠것 같았기에.
오필리어는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메서였다.
여자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자세를 잡고는 오필리어의 검을 받았다.
여자의 칼 끝에 피가 묻어있고, 검날이 조금 나간것으로 보아선, 자신이 계속 지니고 있던 아밍소드임이 분명했다.
오필리어는 검을 뒤로 물러서며 검이 맞물린 곳에서 검을 빼냈다.
여자가 틈을 놓치지 않고 손목을 비틀어 오필리어를 향해 칼을 찔렀다.
오필리어는 황급히 자세를 바꾸어 왼대각선으로 칼을 내려쳤다. 하지만 발이 꼬여 뒤로 빠지진 못했고, 밑으로 내려간 여자의 칼은 오필리어의 허벅지를 칼 끝으로 길게 베었다.
오필리어가 베인 반동으로 여자를 향해 횡단으로 베었고, 여자는 아차, 하고 허리를 뒤로 빼밀며 뒤로 물러났다. 발목이 삐그덕대기 시작했다.
애초에 엔지니어 주제에, 칼을 저렇게 다룰 수 있다는걸, 저번을 통해 알 수 있었어야 했는데, 확실히 지금 오필리어의 눈에는 뵈는게 없었다. 머리가 돌아가기는 커녕, 분노때문에 예측은 커녕 간단한 것 조차 생각하기 어려웠다. 지금 베고 피하는 것은 그저 무의식대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은 하등할 뿐이야, 알아?"
오필리어가 달려들자 여자는 가볍게 한손으로 칼을 쥐고는 옆으로 몸을 틀었다.
순식간에 옆이 허술하게 되자, 여자는 오필리어의 손등을 칼로 찍어내렸다.
메서는 다른 대거보다는 검날 부분이 손잡이보다 더 길었기에, 자동적으로 끄트머리를 잡음으로써 손뼈를 노출할 수밖에 없는게 흠인데, 그걸 노린것이었다.
오필리어는 신중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손에서 빠져흐르는 검을 보고는 밑으로 쓰러졌다. 맨 처음 여자를 보았을때 느꼈던 고통이 다시 알싸하게 퍼졌다. 그땐 왼쪽, 그리고 지금은 오른쪽.
"양쪽이 다 뚫려본 소감은?"
여자는 웃으면서 칼을 한바퀴 돌렸다. 안에 있는 내장이 모두 돌아가는 느낌에 오필리어는 신음을 내뱉었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싸우는 와중에도 많은 피를 흘렸으니 당연한건가. 오필리어는 여자의 괴물같아, 라는 짧은 말을 들으며 정신을 놓았다.
이젠 정말 치료해 줄 사람도 없었다. 자신의 죽음은, 소용돌이 안이나 코어괴물에게서라도 좋다고 장담하고 있었는데, 막상 죽음이 닥쳐오는게, 이럴때였다니.
오필리어는 눈 앞이 흐려지는걸 느끼며 헛웃음을 지었다, 살짝 올린 입가에 피가 흐르는것이 느껴졌다, 여자가 자신의 팔을 잡고 이끄는 것이 느껴졌다.
찔린 옆구리가, 모래에 쓸릴때마다 벌어져서는, 모래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물질의 느낌은, 구토감이 먼저 쏠렸다. 그러고는 젖어들어갔던게 느껴졌다.
물 속에 던져진걸까, 아마 저 여자는 혹여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발견될 자신의 시체를 걱정한 것임이 분명했다. 입을 벌리니 빠져나가는 기포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먼지들과, 물때문에 이젠 잘 비치지도 않는 달빛이 그 뒤로 눈에 밟혔다. 온 몸이 멋대로 물에 흔들렸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몸에 힘을 빼고, 그저 눈을 감고 최후로 느껴지는 물을 몸 전체로 갈랐다.
오필리어, 내 이름에 걸맞는 최후였다
어렸을때 잠깐 읽은 책에서의 자신의 이름을 떠올리고는, 오필리어는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보고서대로인가?"
"당연하죠, 뭣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남자는 미간을 짚고, 부러 찡그려진 이마를 보란듯이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아마 여자가 보란듯이 하는 드러내는 행위였음이 분명했다.
여자는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브라함에게 할 말이 없어지지 않나, 능력의 조사를 빌미로 잠깐 데려다 놓았던건데..."
"하지만 날 죽일려고 했다구요"
여자가 퉁명스럽게 그래도 시체는 잘 처리했으니까, 발견 될 일 없을꺼에요. 라고 말을 덧붙였다. 물밑에 가라앉아 있다면, 불어서 형태를 알아보로 수도 없을것이다. 라고 여자는 판단했다. 그에대해 남자도 같은 생각인건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오염되었단 것 치고는.......괴물같은 놈이군"
여자가 그래요?하고는 명랑하게 웃어보였다.
남자는 한쪽 눈썹을 움직여보이더니 여자에게 손짓을 하며 무언으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여자는 알겠다는 듯이 서랍장에서 한개의 도장을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이건 자네 도서고에도 놔둬"
"거기 놔둬서 뭐하게."
"말이많군, 닐이 기다리고 있다며? 얼른 꺼져"
남자가 보고있던 종이 위에 도장을 세게 찍으며 반박했다.
여자가 투덜대며, 종이뭉치를 받아들고는 이에 분개하듯이 문을 박찼다.
오필리어 브루노아, 그 신원확인서 위에 '사망'이라는 붉은 글자가 찍혔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