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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confession









회사. 개판이긴 해도 재밌었지?


나쵸를 봉지 속에서 집으려다. 빈 공기밖에 남지 않았다는것을 깨닫고는 멍하니,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가. 
빈 봉지를 다시끔 위로 들어올려 안을 들여보았다.
애초에 빛이 그 속으로 들어올리도 없지만. - 앞에서 눈으로 떨어진다는 작은 핀잔을 들었다 - 마치 끝부분에서 빛들이 아래로 떨어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 크다고도 할 수 있는 회사는 항상 그렇게 빛이 쏟아져 내렸다.
주위에는 그 빛을 받아 꽃들이 펴있었고. 실은 항상 먼지로 콜록거리는 시늉을 했어도 그렇게 먼지가 많지도 않았다.
그래 신이 만들어 준 장소.

전지전능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준 장소.
볕이 안드는 날은 없었고, 또 볕이 항상 드는 날도 또한 없었다.
낮이랑 밤이 있는 곳이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곳이었고. 그럼 당연히 우리들도 공존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글쎄"

봉지를 내려 앞의 사람을 한번 힐끗. 보고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그다지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보고서로 우리 실권이 더 강해지고, 그에 있어서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갔고.

확실히 개판이었던것은 맞아.

작게 끄덕이며 그렇게 소근대자. 앞에서 푸하하. 하는 청명한 웃음이 들려왔을 뿐. 그 이외의 대답이나. 언질은 없었다.
아마 또 그놈의 습관이 나오는거겠지.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고 있기만 하는. - 생각을 하는지 아닌지는 나는 네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 









책의 한 귀퉁이를 넘기다 보면, 그런 페이지가 있다.
겹겹히 한쪽이 접혀있는 페이지들.

무엇을 전하려고 내가 접어놓은 것인지. 아님 그냥 실수로 접히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중요한건 그렇게 차곡히 세모모양으로 접혀진 페이지는 다시 펼쳐지지는 않고 새로운 의미가 되는 것.

많아봤자 이주정도밖에 안되는 날들이 그렇게 접혀서.
묶여 나에게 있어서 숨을 조이는 그런 의미가 부여되어서.



그 아픔의 크기만큼 성숙해 질 거란
그 환상의 끝은 늘 똑같아
돌려 놓을 수 있다 해도 이미 너무 많은걸 
알고 느껴버린걸. 없던 일이 될 순 없어






사직서 수리는 언제 돼?


다시 글쎄. 하고 한숨을 내뱉듯 말하니 또 앞에선 뭐야 그게. 하고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월급도 많은데. 아깝지 않아? 그런 말을 들으니 확실히 아까운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아직 신 옆에서. 그 수많은 천사나 악마들 사이에서 나같은 것이 끼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애초에 물욕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 자체가 천사로서 임할 자세도 아닐 뿐더러.


이름을 알려주진 않았다. 용케 다른 몇몇이 알아내서 후에는 모두 '라구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기야 했지만.
일곱번째.- 물론 기독쪽에서는 박탈당하기도 했다만 - 사도씨. 천사씨.
이름보다는 그 이름이 편했고. 대하기도 수월했다. 이름으로 부르는 다른 자-알고있는 천사나 악마-들은 얼마 없으니까. 

나는 이름을 불리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가슴을 막고있는 느낌이 든다.
라구엘이라는. 이름을 따온것만으로도, 불리는 것만으로도 자아를 건너 초자아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다.
그로 피해를 보는 일은 없지만 - 애초에 현세에 들어서 덕을 실천하기란 이미 무리라고 생각한다. - 애당초 나는 그런 손해를 입는걸 싫어하고. 신께서 들으면 무슨 말을 하실진 궁금하지만.

이에 대한 생각은 항상 인간쪽으로 내려가 즐기고 오는것부터 이미 난 글러먹지 않았나. 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채식주의는 아니다. 생선만 먹지도 않는다. 물론 나도 나쵸만 - 잠깐 생각하다 웃음이 나와 핀잔을 듣는다 - 먹지도 않는다.
땡땡이를 치고픈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일찍 끝내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해 항상 빨리 끝내놓지만. 일할때 놀고 있는 다른자들을 보면 언제나 자신도 놀고 싶은건 마찬가지였고.
연애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해선 말을 아끼겠지만 - 언제나 제일 중시되는 것이니까. 인간이든. 무엇이든 - 성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야 인간을 모방해 만들어진 것이 천사니까. 당연하다.



신의 사자래도. 기독교든 유대교든. 콥트 정교회든 어디든. - 저마다 다 다른 이름으로 불러대서 그닥 좋아하는 곳들은 아니긴 하지만 - 사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데에 의심하지 않고.
그것이 또 사실이기에. 
천사는 인간의 모습을 띈다.
인간의 신앙이 천사를 인간의 모습을 띄게 했고. 또 그것은 인간의 감정을 가지게 했고, 그것이 인간의 원초아나 자아에서 조금 더 진보된 초자아를 가지게끔 했다 - 단순히 이상을 원하는 인간의 목표의식이다.


내가 너희에게 그런 애틋하다고도 할 수 있는 - 말하려니 조금 부끄럽다 - 감정을 가진건 당연한것이고.
이름을 불리지 않음으로서. 무언가 앞으로 만나게 될 너희에겐 조금 그런 이상적인 것에서 탈피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다.
금욕이라는게 그냥 이름 한개로 그렇게 간단히 깨지는 것이라면 그냥. 지키지 않는게 더 좋을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여러차례. 물론 이건 이제 그 자들에겐 비밀이지만.


모두가 각 부서로 발령나고. 예전처럼 시끄럽진 않지만. 그래도 혹여나 마주칠까 무서워 사직서를 내러 가는 날도 그랬다.
오늘도 나른한 부장에게 그냥 의사를 전하고. 봉투를 내밀고. 미리 싸두었던 되지도 않는 몇개의 짐을 놔두고 - 곳곳에 숨겨둔 나쵸는 그냥 놔두기로 했다. - 재빨리 나와버렸다.
속세와 멀어지는 데에 있어서 정을 두면 안된다. 그런것에 일일히 미련을 둔다면. 







그러고보니 벚꽃이 그대의 양 옆머리색과 닮았네요
그대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아요-







돌아오는 그 날에 나는 머리를 조금 더 짧게 쳤고. 그리고 끼고 있던 귀걸이도 이제는 쓰지 않는다.

벚꽃을 닮았다던 그 긴 옆머리도 지저분히 잘라버렸다. - 아마 삐죽거리며 옆으로 삐져나올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모습을 보곤 중이라도 되냐는 라지엘의 물음에 짧게 코웃음만 쳤다.
그래, 이제 매번 입는 그 와이셔츠라거나. 니트같은건 입지 않는다.

그 날은 비가 와서 벚꽃잎들이 다 떨어져 내린 날이다.
마치 그걸 신이 코웃음이라도 치듯이. 마치 부러 보라는 듯 다 떨어트린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으론 후련하기도 하면서 씁쓸했다.
그 비는 촉촉히 내 머리 위에서. 속으로 파고들어 마음 속까지 적셔 놓았던것 같다.

네 이름은 라구엘이야.

그렇게 정해졌을때부터.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그를 신봉했다. 두꺼운 책들을 손가락으로 쓸어, 중요한 페이지 구석을 접어가며. 새벽까지 읽다 잠드는 날도 허구했던것 같다.

활자를 손으로 짚어 그릴때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매일 입는, 매번 행사때마다 입는 로만 칼라를 꺼내 입고 있으려 치면. 이런 생각도 들었다.



굳이 이렇게. 묶여있어야 하는걸까.

거기에 대한 의문은 최근에 들었던 것이고, 그 의문이 갑자기 왜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 30년 평생을 회의감 없이 잘 살아오다 -
이때까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거기에 의문을 두진 않는다


만약에라도. 이 결심이 깨어질만한 동기가 있다면.


사직서를 내고선, 부쩍 회의감이 드는 얼굴을 한번 바라보며. 비때문에 져 이제 맨 꼭대기 부분에 살짝씩만 피어있는 연한 빛 벚꽃들을 보며, 하루내내 별 볼일 없는 생활을 영위했다.
'라구엘'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당연하지만. 실은 벗어나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할 필요가 있어?"

머리를 땋아 내리던 손이 조금은 느려지면서 앞에 있던 네가 뜬금없이 나에게 물었다.
평소에도 표정이 밝지 않다더니. 하는 등의 여러 핀잔을 주었던 라지엘이기에 별 다른 말 없이 또 손에 입을 묻고는 그냥 의자에 앉아내려 무시했다.

지금이 중세 시절도 아니니까.




넌 마음에 안들었는지 땋은 머리를 풀고는 다시 빠른 손놀림으로 맨 앞부분을 다시 땋았다.
그걸 빤히 바라보고, 별 생각 없이 그냥 보고만 있었다.

뜬금없지만 명상이란거. 의외로 쉬운 것 같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잖아 지금처럼.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 명상의 의의에는 맞지 않아."
네가 식탁에 놓인 책을 한번 보더니 나를 향해 비웃었다.
노골적으로 표정에 불쾌한 기색을 띄웠다.


그래 지금 현대에 와선 내 이름 석자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그건 그냥 중세때 종교인들이 낳은 산물일 뿐이고. 지금 나는 그 이름을 베끼듯 그냥 쓰고 있을 뿐이다


무어가 '복수'라는 거고 무엇이 '감시'라는 걸까
동료를 확인하되, 스스로를 확인하지 않는것인 바보같은 짓이다.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비록 그 직무에서 벗어났어도 그러면 안되는 법이다.

'라구엘'이라는 이름 석자를 따르진 않더라도. 그 곳에 검은 잉크를 들이붓는 행위를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너도.

거기까지 올라온 말은 다시 라구엘이라는 내 이름 석자에 가로 막혔고. 너는 안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그냥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미 살아온 30년의 세월을 깨기 힘들다는것은 너도. 나도 안다.

이렇게 살아온데에 익숙하고. 또 등 뒤로 뻗어있는 두 날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너라도 극단적이었을 거면서.
여섯번째. 네 이름 석자에 너는 따르고 있어?
네가 나처럼. 이름에 따르지 않고 욕심에 따르고싶다면 너는 어떻게 행동할까.


"난 비밀로 남겨두진 않아."


너는 천천히 나에게 타이르듯이 말한다.
끝에 남은 벚꽃잎마저 떨어지는 듯하다. 그처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라지엘이 땋던 손을 멈추고. 손가락 세개를 펼쳐 나에게 보여주었다.
무슨 말은 하지 않고 조용 조용히 한개씩 접어나갔다.

말하지 않아도 뇌속으로 전해 들을 수 있는 - 어쩌면 이미 세뇌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강하게 들려오는 머릿속의 말소리에 - 것이라.
너는 구차히 쓰거나. 말하거나하는 둥의 행위를 하지 않고 조용히 손가락으로만 나에게 무언가를 전해 주고있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검지손가락을 가만히 두고서야, 라지엘은 말을 떼었다.


"모든 마음에 두고있는걸 전하고 와."





너와 나는 다만 한글자 차이라도 지향하는 그 의미가 서로 다를 뿐이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네가 싫어졌다.
















비가 지나간 공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해서. 떼기 힘든 발을 옮기며 이전까지만 해도 항상 발을 옮기던 그곳으로.
바깥은 퍽 따뜻하고 비 오기 전 꽃들이 마저 피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내듯이 만개하고 있어서.
보고 많은 말을 할 용기는 없었다. 말할 수록 자신이 초라해 질 것 같아서. 또는 자괴감이 올라올 것 같기도 해서.

내가 왜 네 말을 따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직설적으론 말하진 않는다는 자기변명을 살짝 늘어놓고.



가만히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는 널 불러내. 많은 얘기할 필요 없다는 듯이 퉁명스런 얼굴로.



으음... 수동적인 걸 좋아하시는 건가요...?
난 인간관계에 있어선 수동적이야~



전에 엄청 횡설수설한 말들이 떠오르는 듯 해서 가만히 입술을 씹고 있자니 
앞에 있던 너는 뭔가요? 하는 말로 화사히 웃어 넘겨버린다. 그래. 그게 네 화술법이었다는 것을 나는 지난 몇일덕에 잘 알고있다.



고해할 것이 생겨서. 찾아왔어.



그런 멍청한 말을 내뱉고는 가만히 가슴께에 달린 십자가를 만져보았다.
모습이 이런것 치고는 퍽이나 어울리지 않는 대화다. 
착한 너는 아마 이런 터무니 없는 부탁이래도 들어준다고 하겠지.


잘가란 인사도, 용서하겠다는 기도도 필요하진 않지만.
비밀을 남기지 않겠다는 그 단순한 명목으로. 너에게 말하면.

너는 아마 성부, 성자의 이름으로 용서한다고 기도를 해줄까.
아니면 앞으로 만나는 일이 없어서 아쉽다는 투로 얘기를 할까

나에게 약한 장난을 치고 말해보라는 네 말을 듣고선.


천산데도 욕심이 생겨서~


비록 너는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수도 있지만.





내 마지막 눈을 감겨줘요 
마지막 눈물에 마지막 기도에 
널 남길수 있게 널 담을 수 있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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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LL - Fantasy」 , 「NELL - Afterglow」
  •  BGM ; David Larsen - Ae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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