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사각거림.
주홍빛으로 물든 거리 늘어지는 그림자.
방 한구석의 좁은 협탁 위.
쓰지도 않았던 만년필을 하나 꺼내선, 잉크를 채워넣곤 , 별 의미없는 편지쓰기가 시작되었다.
' 안녕. '
나에게 하는 이야기
"타임캡슐?"
뜬금없이 말을 꺼낸건 명절이라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네가 한 말이었다.
평상시에 그런 감성과는 동떨어진 우리들은 당연히 그 말에 오글거린다던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고, 요컨대 너는 형수님이 그러는게 어떨까- 하고 말했을 뿐이거든. 하고 다시 벽에 기대어 tv 리모콘만을 이리저리 조작할 뿐이었다.
모르지는 않았다. 타임캡슐.
초등학교때 친구들끼리 이리저리 떠들며 만들어보자는 얘기도 있을것이고, 아마 빈말로 난 뭘 가져올거다. 하고 망상을 품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랬고,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들은 신선하고도 그 어린 나이에는 감성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 정확히 실현해보지 못한 그것.
어린 감성엔 누구나 해봐야겠다! 하고 쉽게 생각하지만 어른이 되어선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오히려 감성팔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는 그런 존재.
그런 존재가 네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걸 별 거리낌 없이 - 욕설 없이 - 받아들이는 형제들 또한 신기했다.
- 보통같으면 그게 뭐냐 마츠새끼 라던가, 토도마츠의 비아냥이라던가 들려야했을텐데.
실은 형제들이 네 말에 그다지 반박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네가 결혼한 이후로, 이 집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모두가 한발자국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
오히려 형제들의 발걸음을 내가 맞추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의외로 앞을 향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아직까지는 마츠들인채지만, 그래도 여섯이서 한사람, 한사람이던 여섯은 바뀌지 않은채로.
톱니바퀴 하나의 회전이 조금 바뀌면, 다른 톱니바퀴도 돌아가는 걸 바꾼다.
여섯이서 한사람, 그 중 한명인 네가 바뀌었기에, 다른 다섯도 바뀌어 가는거야.
토도마츠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쥬시마츠는 어딘가 기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나가기도 했고, 뭐 아직 남은 두사람은 그대로지만, 그래도 의식의 변화라고 해야하나.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까내리던걸 어째서인지 그만두었고, 그걸 인지한 카라마츠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레 집에 찾아온 변화는 무언가 어색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이 모든게 네가 독립한 이후로 천천히 진행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저 앞으로 달려나가는 형제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쓸쓸함과 더불어 뿌듯함도 같이 찾아왔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라고 생각했다.
이 자연스레 돌아가는 톱니바퀴들에 어울리지 않는게 있다면 바로 나겠지.
그래, 나 혼자서 아직 제자리 걸음만을 하는 중이었다.
이젠 상징처럼 되어버린 구직 잡지를 손으로 구기곤 속으로 쓴맛을 넘겼다.
혼자서 그런 막막한 대답을-쓴맛- 속으로 삼키며 채널을 돌리는 너를 향했던 눈을 아래로 내렸다.
좋다며 오소마츠의 팔을 잡아 흔드는 쥬시마츠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너는 무심한듯,-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럼 소중한거, 집어넣고 이후에 보자.' 라며 말을 내뱉고는 나는 뭘 넣지? 하고 설레발치는 동생들을 뒤로한채 다시 TV를 보는데 열중한 것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
당신에게, 물어본다.
당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매우 다양한 답변이 나오겠지만 아마 당신은 선뜻 고르기 어렵지 않을까.
아마 어렸을 때부터 같이 써온 물건이나, 누군가에게서 받은 소중한 것이 있지 않은 이상은 바로 대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아니 실은 일생에 있어서 나는 소유욕이란걸 그다지 부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야 아니다를까 내것이 형제들 것이었고, 형제들 것이 내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 아마 형제, 자매를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 공감할 지도 모르겠다.
그다지 '부모님이 뭘 가지고 싶니? 하고 물어볼 때면 나는 형제들과 달리 말할 것이 없었다' 라는 서술로도 설명할 수 있었다.
쥬시마츠나 카라마츠처럼 -야구나 연기- 등에 빠져있는 것도 없고, 이치마츠의 고양이 장난감 같은 - 그 당시 듣고는 부모님이 꽤나 당황했던것으로 기억한다 - 누군가를 위해 해줄 것 또한 없었기에.
아, 아이돌 앨범이나 넣을까. 하는 정말 마츠다운 생각이나 나올 뿐 도통 머릿속에선 좋은 생각은 떠올리지가 않았다.
분명 앨범을 보고 10년 후의 나, 조롱하지 않을까.
명절 - 네가 형수님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날 - 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명절도 계속 겪은게 아니라 이제 딱 두번 겪었을 뿐이지만. 나는 카라마츠처럼 연기를 잘 하는편이 아니었다.
비비 꼬인 마음은 너를 향해 잘지냈냐- 며 웃어주는 것도 할 수 없어서, 결국 또 도망치고 만다.
언덕을 마구 내려가, 버스정류장까지. 나는 집을 단 한번이라도 뒤돌아보지 않고 내 물건만 챙겨서 뛰어 내려가는 것이다.
네가 독립한 이후로 나는 일부러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왔다.
우선 너와 내가 함께 살아온 공간인 집에 머무는 것조차 고역으로 느껴져서, 매번같이 언덕에서 그냥 비행선을 바라본다던가, 아님 바다를 본다던가 - 정말 아무 생각없이. - 아니면 지금처럼 도망친 이 곳 - 그냥 한적한 커피숍일 뿐이었지만 - 에서 그냥 구직광고나 구인모집이나 뒤적거린다던가, 핸드폰으로 의미없는 트윗을 한다던가. 그래 나는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그 짓을 반복할 뿐이었다.
"소중한 것."
역시 너와 함께 있는 그 공간에서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온것에 대해 혀를 한번 차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린것이 건너편 자리의 여성에게 닿은 모양이었다. 여성의 고개를 한번 기울이곤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지자 언뜻 느껴지는 창피함에 구직잡지 사이로 얼굴을 가렸다.
나 정말 한가지에 집중 할 수 없는 성격이구나.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 테이블 위로 잡지를 올렸다. 턱을 괸 얼굴에는 아마 근심이 가득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하고 있을려면, 계속 올라오는 잡념들 덕분에 근 생활은 항상 엉망이었다. - 물론 그게 학창시절엔 아니었다는 말은 아니다.
결국 항상 트위터를 하거나, 아님 이렇게 망연하게 테이블 나뭇 결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린다던가 하는게 이 카페에서의 대부분 일상이었다.
똑.
테이블을 한번 두드린 듯한 - 청명한 나무소리 - 가 귀로 흘러 들어올 때 즈음, 나뭇결을 따라 그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괸 턱을 들어올려 앞을 바라보았다.
건너편의 여성이 자신의 일회용 종이컵을 들고 아무런 동의나 양해를 구하는 말 없이 - 그냥 테이블 한번을 두드리곤 말없이 - 맞은편에 앉을 뿐이었다.
안녕.
하고 건네는 말에 잡지를 꽉 종이가 으그러질 소리가 날때까지 쥐자 여자는 웃으며 계속 날 바라볼 뿐이었다.
매번 여기 있길래요.
매번 있긴 했어요.
얼굴이 꼭 자살할 것 같은 사람 같아서.
아, 그 정도로 심했나. 스스로 반성하곤 아니라는 듯 손을 한번 휙 여자 앞에서 젓더니 여자는 농담인데 하며 자신의 컵에 꽂힌 빨대를 가지고 손으로 장난칠 뿐이었다. 문득 매번 있길래, 하는 말에 여태껏 내가 했던 행동들을 다 보았다는 건가, 하고 창피함에 열이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매번 여기 오면서도 주위에는 지독히 신경 쓰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해 질타를 날리고는 별 수 없다는 듯 테이블에 이리저리 놓여진 잡지들을 반으로 휙휙 접어 테이블 밑으로 내렸다.
휑한 테이블이 영 익숙치 않게 느껴져서 인상을 한번 찌푸린다.
소중한 것?
여자가 작게 소근거리며 말한 말에 무의식적으로 형제들끼리 타임캡슐을 만들기로 했다고 입밖으로 꺼내고, 여자의 입을 가리고 웃는 웃음소리에 괜히 눈썹을 찌푸려보이자 여자는 아니, 그냥 귀여워서 하고 몇차례 더 웃더니 결국 테이블 위로 고개를 숙여가며 웃었다.
그래, 나도 웃긴거 안다구요. 다 큰 시커먼 성인 남자들끼리 타임캡슐이라니. 입을 몇댓발자국 앞까지 삐죽 내밀고 있으려니 여자는 그 모습에 또 웃음을 터트린다.
참 속 좋은 여자구나.
마음속으로 생각하던 말을 언제 꺼내버렸는지 여자가 그치만 그걸 또 고민하고 있는 당신이 웃기잖아요, 하며 다시 빨대를 돌려가며 장난을 친다.
여자의 의외인 답변에 눈을 크게 뜨고 모르겠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여자는 그걸 대응하기라도 하겠다는듯 같이 빤히 마주보았다.
소중한 사람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그럼 그 사람이 준 거라던가, 하는 말에 끄덕이던 고개를 재빨리 좌우로 젓는다.
그 사람이랑 같이 했던 무언가?
...구직?
말해놓고도 어이없는 대답에 저 스스로 하하...하고 웃음짓다가 옆에 있는 구직잡지들을 봤다.
손 때가 많이 묻긴 했어서 - 그 이전에 엄청 구겨지고 찢어졌지만 - 이리저리 닳거나 접혀있는 부분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중한 사람, 나의 형.
마츠노 오소마츠.
아직도 너에 대한 감정은 여전해서.
네가 떠나면 마법처럼- 실연한 사람이 으레 그렇듯 - 자연스레 잊혀지거나, 별 시덥잖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실연한 사람들은 이후에 얼굴이라도 보지 않기나 하지, 매번 잘 지내냐며 전화하는 네 모습은 내가 널 잊지 못하게 만들어서.
마치 잊을 만 하면 네 존재가 내 마음속에 쾅쾅 박혀, 심장 깊숙한 곳까지 뿌리가 박히고.
너와 내가 함께한 공간에 있을 때마다 나는 장이 전부 뒤집어 지는 느낌이었다.
그건 딱히 특별한 사례보다는 당연히 너에대한 그리움이나, 네 아내에 대한 질투, 혹은 네가 없어졌다는 허탈함.
네가 혹여나 다시 나를 향해 돌아봐 줄 때가 있지않을까.
나는 머리로는 당연히 아닐거라고 이해하는 그 말을, 무의식적으로 이곳에서 계속, 헛된 기대만을 품고.
나는 머리로는 당연히 아닐거라고 이해하는 그 말을, 무의식적으로 이곳에서 계속, 헛된 기대만을 품고.
계속, 헛된 노력만을 하고.
계속, 그로 인해 허탈감과 그리움을 느낄 뿐이었다.
" 역시 그때 한번의 눈물을 쏟아내는걸로는 부족했는지 몰라요. "
그 때만큼은 타인의 손길이란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저기, 당신도 소중한 사람이 있나요?
뜬금없는 말에 어리둥절해 하는 여자에게 마음속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조차 전하지 못하는 바보가 여기 있답니다.
아니, 전해선 안되는 거겠지만.
일부러 거리를 두는 스스로의 행동에 남은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받은 물건도, 무언가 준 것도, 같이 해온것도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아아, 바보구나. 결국 이렇게 네가 떠나는 건 기정된 사실이었다.
조금이라도 오래, 조금이라도 같이 무언갈 많이 했더라면, 내가 부러 변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악동인채로 네 옆에 남아 있었다면 지금 나는 그나마 덜 후회할 수 있지 않았으려나?
소중한 물건따위는 없이 그저 소중한 추억밖에 남지 않아서 - 그것도 떠올리면 현실에 날카로운 칼날이 박히듯 가슴이 아려오는 추억들이.
차라리 물건에 얽힐 기억이었다면 땅 속에 묻어 그나마 나아진 미래의 내가 어떻게 소각할 수 라도 있지 않을까.
머릿 속에 잔존해있는 기억들은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계속 심장 주변을 돌아다닐 뿐이라 매번 남몰래 심장을 부여잡고 꺽꺽 거리는 울음을 내뱉는다.
" 나는 그 마음을 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아주는 여자의 목소리는 마치 네가 그날 밤 나에게 걸쳐주었던 외투처럼이나 따스해서, 여자의 손을 세게 쥐더니 여자는 웃으며 작업거는거에요? 하며 농담조로 던졌다.
" 난 아마 돌아가지 못할 거에요. "
고개를 젓고 여자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전했다.
난 아마 돌아가지 못하는 톱니바퀴가 될 것이다.
아아ㅡ, 사랑이란거 말하기 힘들구나.
스스로도 아닐거라며, 부정하고. 그렇게 매번 집이나 그 언덕길을 뛰쳐나오면서도 나는 아직도 널 좋아하고 있었다.
아직도 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회상하며,
소각 할 수 없는 이 기억들을 떠 안은 나는 결국 이 기억들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너를 사랑해서 가지고 있는 이 기억들.
매번 기억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무의식에 난 앞으로도 너를 그리워하고 좋아할 것이다.
이 기억이 바래지기 까지는 몇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 나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이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이다.
네가 혹여나 다시 나를 향해 돌아봐 줄 때가 있지않을까.
그런 네가 돌아올 때 변함 없는 나를 위해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겠지.
결국, 무의식적으로 이곳에서 계속, 헛된 기대만을 품고, 계속 헛된 노력만을 하고.
결국, 무의식적으로 이곳에서 계속, 헛된 기대만을 품고, 계속 헛된 노력만을 하고.
종이의 사각거림.
주홍빛으로 물든 거리 늘어지는 그림자.
방 한구석의 좁은 협탁 위.
쓰지도 않았던 만년필을 하나 꺼내선, 잉크를 채워넣곤 , 별 의미없는 편지쓰기가 시작되었다.
문단의 맨 첫 글을 그렇게 썼다.
내가 가진 물건도 얼마 없지만,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제일 지금 소중한 것을 담아 보냅니다.
안녕
오랜만이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건강하시다면 다행이지만...
그나저나 그때의 그 기분은 잊을 수 있으셨습니까?
아직은 못 잊겠습니다.
언젠가 나이를 먹으면
알게될 날이 오게 될까요?
정말 이걸로 괜찮았던걸까
가끔 생각할 때가 있지만
그런건 말하지 않기로해요
왜냐면 나는 알고 있으니까
나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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