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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마츠상

[오소쵸로오소]짝사랑만 계속 할 뿐인 이야기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거품.
저 멀리 하늘에서 비춰오는 구름과 별빛.
잔잔히 들리는 비행기의 소리.


바다 내음은 아직도 신선한채로. 밤을 그득히 실어 나른다.

bgm : 은색 비행선 - supercell



"힘들어-"

"조금만 더 힘내~"


언덕길을 힘들다는 기색이 가득하지만 묵묵히 걸어오르는 네 모습에 웃음을 한번 흘렸다. 그다지 가파르지도 않은 언덕이고, 항상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거쳐야하는 길목이었다. 
되려 집에 거의 다 왔다는 그 생각 때문일까. 나는 이 언덕길을 잘 오르지 못했다.
항상 중반쯤 와서는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두드리거나, 아니면 무릎에 손을 대고는 상체를 기대기 일쑤다.


이 언덕길을 오를때는 항상 정해져 있는 시간이 있다.
시내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 시기, 그 6시를 조금 넘어서 버스를 타고 내려 조금 걸으면 도착하는 7시쯤.
여름엔 슬슬 해가 떨어질 채비를 하는 때고 겨울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별이 길을 비추는 때였다.

그리고 항상 하늘을 지나는 비행기-반짝이는 빨간불빛-을 한번 관례적으로 보고 나면 너는 다시 나에게 가자가자~ 며 재촉하는 것이다.



한창 초등학교 시절부터 형제들과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초등학교는 이 언덕길을 도로 내려가 있는 곳에 있었다. 지금은 학생이 없어 아침에 얘들로 북적이던 풍경은 없어진지 오래였다.

그 무렵에도 밤늦게 -혼날 각오를 하곤- 형제들과 돌아오며 매일 하는 놀이는 언덕길에 누가 먼저 도착하는가. 혹은 누가 먼저 북두칠성을 찾아내느냐~ 의 얘기였고. 그런 시시한 장난임에도 그때는 모두 어렸으니까. 매일매일 반복되는 놀이였지만 다들 재밌어 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때.

초등학교때는 그랬지만. 중학교 이후로 보게된 것은 북두칠성이나 달이 바다에 비춘 풍경이 아닌 자신과 똑같은 형제의 모습. 장남의 모습.


눈을 빛내며 별을 찾거나 웃긴 구름을 찾아나서는 모습에 어린 마음에도 그 소중함을 알게되었어.

평소 다른 형제보다 나와 더 어울려주고, 마음을 나눠주는 네가 좋아.
항상 장난 가득에, 힘도 세서 장난으로 한번 맞기라도 하면 억울함이 가득 생기지만, 
이후에 괜찮냐며 보듬어 주거나, 자그마한 실수가 있더라도 못본척 눈감고 다정하게 다시 내 이름을 불러주는 네 모습은 첫사랑의 그 심장고동과 완벽하리만큼 일치해선 아. 이대로는 안될정도로.




이 길을 끝까지 오르면
당신은 언제나 하품을 하면서
그곳에서 기다렸어.
바닷 바람 냄새가 나는 길에서.




조금 철이들고 난 후에 찾은 것은 장남의 얼굴도, 달도, 별도 아닌 비행기 꽁무늬의 불빛이었다.

같은 반 아이를 좋아한다는 그런 감정처럼 쉽게 내보이면 안되는 것을 자각한 이후의 일이었다.

어릴땐 멋모르고 존경, 동경, 우애의 의미로만 알아왔던 너의 감정이 철회되고 다시 새로운 계약서가 갱신되듯.
계약서에 적힌건 틀림없는 사랑.
맞아, 난 평생 문학시간에만 쓸 줄 알았던 '사랑' 이라고 부르는 그 감정.


새로운 계약서에 지장을 찍는 그 순간은 너무나도 괴로웠어.

다만 그 괴로움만큼 내가 너에게 이 사랑이란 감정을 들키지 않을 자신은 너무나도 없어서, 무의식적으로 너를 쫓던 손과 발은 네게서 멀어져. 너를 쫓던 눈은 네가 찾는 별과는 달리 낮게 반짝이며 차갑고 물질적이기만 은색의 비행선.



언덕길을 오르던 네 손을 마침 운동장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졌단 핑계로 꼭 잡아 멈추게 했다.
다른 때와 다름없이 너와 나는 장난을 가득 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문득 네가 내가 가진 이 감정을 눈치채진 않았을까, 그렇담 도망치지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불안감이 바람에 실려 마음 속에 자리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너는 언덕길을 달려 그 너머 어디론가 사라져버릴것만 같아서,

어린 불안감에 맞닿은 손은 네 손인지 내 손인지, 축축히 젖어있어서-마치 너머로의 바다에 퐁당, 담가왔기라도 한 것 마냥- 더욱더 놓지 않고 꽉 잡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 조금만 더 힘내. "


그것이 어린 네가 내 손을 잡으며 한 말.
힘내라는 그 말은 위로도, 격려도 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마음 속에 남아있다. 
천천히 갈게. 빨리와. 같은 , 같이 가주겠다는 말도 아니었고 기다릴게 같은, 저 너머로 사라지지않겠다는 약조 또한 아니었기에. 
나는 네가 다시 너머로 사라질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런 짧은 희망임에도 너의 대답은 애매하기만 했다.




당신도 나도
어른이 되어간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어
바다새가 울고있었던
그 여름 당신과 둘이서 돌아간 길
쫒고 또 쫒고 있어.
은색 비행선




실은 내가 언덕길을 잘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힘차게 나아가는 네가, 해가 뜨는 저 너머로 넘어가는 네 모습이 보기 싫어서 나는 너를 정상에 다다르기 전에 항상 멈추게 했다.

그럼 네가 빛나는 해를 향해-바다에 반사되어 빛나는 빛을- 보지 않고 언덕의 그늘에 가리워진 나를 바라봐준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널 두고 넘어가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도 받은것만큼, 네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뻐서.

그렇게 매번 너를 이 언덕길에서 멈추게 한다.

늘상 네가 내뱉는 말-나에게 있어서의 희망고문-은 똑같은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이나 이상을 의미하는 별에게 다가가기엔 수겹의 타인이라는 벽에 가로 막혀 있어서.
이런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는 엄청난 기쁨이 되어.




비행기란건, 비행이 끝나면 땅으로 돌아가지?
그렇지-
영원히 별을 본다는건 불가능한거구나.






빛나고 있는 바다만이 변하지 않고서
당신이 웃었던 그 언덕.




" 그러니까 힘들다니까. "
" 쵸로마츠. 오늘따라 어리광부린다? " 
"언제는 안이랬다고? 저 원래 이래요."

빈정대듯 놀리는 네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곤 다시 꿍얼거리니 하하, 웃는 모습이 눈부셨다. 그 모습에 살짝 시선을 끌려버려, 다른 것을 보기위해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 둘이 닮았어, 진짜. "


오소마츠를 때려가며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오늘은 다른때와 달리 편하게 온 것인지 머리를 한개로 높이 묶었을 뿐이었다. - 여자를 보고는 그제서야 다시 허리를 펴곤 한걸음씩 움직인다.

쌍둥이 형제니까요.
그녀에게 전하려던 말은 차마 내뱉어지지 못하고 가슴 속에 머문다.

그 말은 곧 나에게 있어서 별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 한 겹의 대기층이 되어 나를 억누른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또 일자리를 찾거나 혹은 다른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언젠가는 꼭 겪게될 일이란걸 알고 있었다.

여자친구라고 자랑스레 웃으며 데려온 사람.
여자의 모습은 별이 되어, 나를 향해 미소짓는 모습은 저 먼 하늘에 은은히 펼쳐지는 별빛과도 같아 그만 수긍하고 말았다.

그의 손을 잡을때면,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내 손을 쥐어주던 언제나 따뜻한 손. 그는 다른 사람의 손이 시렵지 않도록 항상 주머니에 자신의 손을 넣어두곤 했다.
당신도 그런 따스함이 마음에 든 거겠죠.

그녀가 전화로 그를 부드럽게 깨워주면 그는 행복해보였다.

알지 얼마 안된 짧은 사이지만, 그녀는 강하게 생각할 줄 아는 여자였다. 
그 부드러움엔 포용력이 가득해서. 언제라도 그를 받쳐주고. 그와 함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 항상 남몰래 책임 지고 있던 그를 지켜보며 그 책임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여자였다.




" 아, 나 뭐 놓고 왔어. "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일부러 뒤집어 앞서 그녀와 걷는 너를 향해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곤란하다는 듯이 웃는 너와. 그럼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네ㅡ 하며 제안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는 듯이 그에게 웃어보이며 나는 다시 바로한 자세로 다시 언덕을 내려갔다.
네가 그녀와 함께 다시 언덕을 넘어갈 때까지. 틈틈히 뒤를 흘끗 쳐다보며 언덕을 내려갔다.

내리막길은 도통 오르막길처럼 멈출 수가 없다.
멈추고 싶은 욕구를. 네 옆에서 계속 걷고싶다는 욕구를 두 다리는 듣지 않았다.
토도마츠처럼 능청스럽게 옆에 붙는다던가. 장난식으로 저리가라는 말을 하거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차마 그런 그에게 고집을 부릴수도. 그녀에게 못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네가 그 여자를 집에 데려온 날도 난 입술을 깨물며 결국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쳤었다.



볼을 쓰다듬는 바람 이 언덕
더 이상 이곳에는 아무도 없어.





마츠 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
오소마츠인데 여자친구?


장난처럼 비아냥 거리는 동생들을 억누르고 웃었다.
실은 제일 비아냥 거리고 싶은건 자신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더욱 그럴 수 없는것임이 분명함에도, 오소마츠 너는 축하한다고 웃는 나를 향해 머리만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건 네가 내가 너를 향해 품은 이 비상식적인 사고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나에게 있어서는 안심을 주는 증거이기도 했고.

또 내가 별을 향해 닿으려는 온가지 노력들을 부정하는 증거이기도 했다.


" 비행을 마칠때야, 쵸로마츠. "


내 안에 있는 네가 날 껴안아 주며 작게 속삭였었다.


그 이후로 그 여자는 수없이 우리집을 찾아왔었다.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를 가져온다던가. 가끔 야구를 격하게 한다고 옷을 찢어온 쥬시마츠의 것을 다시 꼬매준다던가-이후 쥬시마츠에게 다음엔 조심해 라고 말해주는것 또한 그녀는 잊지 않았다.- 이치마츠가 데리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몰래 밥을 준다던가. 카라마츠가 농담으로 던지는 허세 가득한 말들에도 입을 가리며 웃어 주었다.-토도마츠의 친구들 소개시켜달라는 말은 외면했었기도 했지만.-


그 방문들이 의미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어서. 멍청하게도 마음정리를 하던가, 아님 성질이라도 내면 될 것을 나는 밖으로 나도는걸 택했다.


변하는건 아무것도 없음에도 나는 그 공간-이제는 그와 나의 공간에서, 내가 방해가 될 뿐인 그 곳-에서 나와 현실을 도피해버리는 것이다.






언덕을 보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를 보다. 갈수록 뒤로만 역주행하는 기억을 더듬더듬 쫓아서 . 너와 함께했던. 그때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야 그 시절이 제일 나에게 있어서는 별과 가깝다고 생각한 그 날들을 쫓아 현실을 도피했다.


정말 멍청하게도 정해진 날짜는 계속 다가오고 있음에도.
정해진 날짜. 
정해진 날짜가 다가오면 너는 어떻게 될까. 
너를 생각하는 마음은 큰데 너와 관련된 제일 중요한 일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다니.

기억의 역주행을 마치고 도착 곳, 저 멀리 바다를 보다 코웃음을 몇번 치곤 모래를 한 움큼 쥐고 물 너머를 향해 던진다.
모래는 불어오는 역풍에 물 너머로 가기는 커녕 내 앞으로 훅 불어와 눈물을 나게 했다.

눈물? 이건 정말 모래때문에 나는 울음일까?
아니, 이건 너 때문에 나는 울음이었다.
너는 그 날이 지나면 다시는 나와 형제들이 있는 곳에선 볼 수 없을 것이고 볼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꿈꿀 수 있는-자리할수 있는- 너는 더이상 없을 것이다.





" 잊어버린 물건은 찾았어? "

나를 쫓아 온것인지, 아님 그 사람이 걱정되니까 찾아보라고 한걸까.
뒤에서 들려오는 그리운 너의 목소리에 울음을 꾹꾹 눈 속으로 다시 밀어넣고는 모래가 들어갔나보다. 하고 얼머부렸다.
뒤에는 찾지 못햇다는 말도 덧붙여서.

이미 어둑어둑해진 밤 공기는 차가웠고, 너는 집에서 가져온 듯 한 외투를 내 위로 걸쳐주었다.
도통 네 얼굴을 위로 올려다 볼 용기는 나지 않아서. 그저 아무 말 없이 다시 모래를 한움큼 쥐고 이번엔 발 치에 쏟아내렸다.
내 감정도 지금 쏟아져 내리는 모래처럼 쏟아져 내리면, 그나마 이 응어리가 풀릴까.

나혼자 몇년간 끙끙대고 앓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갑자기 치밀어 오르다가도, 말하면 안된다는 슬픔에 빠져 결국 알 듯 모를듯한 미묘한 감정이 되어버린다.
그 무렵 너를 멈춰 세웠던 나는 이런 일이 올거란 것을 알고 있었을까?

언젠가는 꼭 올 일이지만, 당장 겪을 일이 아니라 뒤로 미뤄두었던 어린애적인 발상밖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조그마한, - 네가 나를 돌아봐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 일로 쉽게 기쁨을 받는 어린 나에게 이런 일을 겪는다는 상상은 무리였을지도 모르지.

무엇이든 나는 내일의 너를 위해 무언갈 해야했다.
그것이 널 사랑하는 나의 의무였기에....



태양이 지고 늘어난 그림자
나는 당신을 쫓아갔어

"쭈욱 당신을 좋아해서"


하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어.



나와 함께 언덕을 오르는 너도 이후론 없을 것이다.
내 손이 시려울까봐 손을 잡아주던 너도,
같이 웃긴 구름이나 별을 찾아보자고 제안하던 너도.

그런 너를 보지못해 결국 날아가는 비행선만을 바라보는 나도 이젠 없을것이다.




결국 네 얼굴을 보곤 펑펑 울어버렸다.



내일 식을 올리는 너와, 그 여자를 축복하기 위해서 내가 거칠 마지막 단계를 이제서야 실현하는 것이다.
멍청한 쵸로마츠, 그제서야 나는 널 좋아하게된 자기 자신에대한 자학을 관두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데 대한 첫 표현을 했다.


멍청이 오소마츠.
난 덕에 평생 이 언덕길과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할거 같아.

그래도 평생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한다면.-내가 너에 대한 감정을 버리지 못한다면-

네가 혹여나 다시 나를 향해 빛나줄 때가 있지않을까.
나는 그 마음 하나로 이곳에서 기다릴 수는 있을것 같아. 
나는 그 마음 하나로 몇천번이고 이 마음을 실어 비행할 수 있을 것 같아.


"멍청이 오소마츠."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날 보고 당황한 네 표정이 보였다.
그래, 끝까지 몰라서 다행이야. 망할 장남.


"축하해 오소마츠."




잘가 오소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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