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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옅게 비추고, 그것에 반사되는 빛으로 먼지가 날리는것이 눈에 보였다.
아니 눈에 보였다기 보다는 감고 있던 눈 위로 내려앉는것이 잠결에 살짝 느껴질 뿐이다.
이넉의 발걸음 소리가 문 밖에 들렸다.
오필리어는 레티에게 작은 홍차컵을 내어주었다.
물론 자신이 탄 것이 아니라 이넉이 탄 것이었다.
이넉은 사람을 만나는 데에 있어서 그렇게 좋지는 못한 사람이었다.
항상 소수의 말 밖에 하진 못하거나, 아니면 대충 눈짓으로밖에 돌려 보내는 방법밖에는 그는 하지 못했다.
때문인지 그는 레티를 만나든데에 있어서는 항상 제명이었다.
항상 급한 다른 일이 있다면서 일을 하러 나가거나. 아니면 이렇게 홍차나 커피를 목적으로 스리슬쩍 접대실을 빠져나갔다.
레티는 그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이넉의 쓰임새는, 그저 나에게 묵을 곳을 제공해준 사람. 판데모니움으로 올 수 있게끔, 도와준 사람.
뭐 그때의 그에게는 그저 동업자를 고용했을 뿐이었겠지만.
이넉의 저런 특성 덕에 되려 접대는 자신의 몫, 세간에 표면적으로 내 비치는 것은 이넉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그래보았자 브루노아라는 성, 브루노아라는 사람은 1년전에 버렸다.
오필리어 브루노아는 이제 '사망'처리가 찍힌 불쌍한 익사자에 불과했다.
가끔 세수를 할 때나, 거울을 볼 일이 생기면 안의 자신이,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정확히는 '안의 나'라기 보다는 '오필리어 브루노아'일 것이다.
브루노아의 기억을 가지고 브루노아의 몸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 자신은 브루노아가 아니었다.
자신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자신은 더욱 더 브루노아처럼 행동해야 했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은 완벽하게 오필리어 브루노아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죽음의 윤회에 갇혀 수많은 죽음을 겪어온 그에게 있어서 살아있을적의 브루노아란 이미 머나먼 일 같았다.
죽음에 있어서, 덤덤해진 그는 더이상 예전의 휴머니즘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통증에 의한 분노, 고통, 한숨 등의 자신을 위한 것은 남아 있었지만.
타인과 교류하며 찾을 수 있는 것들은 없어졌다.
인간적이다기보다는 이성에 의해서 사고되고 도출되어 나온 감정들.
그나마 친숙해진 레티와 이넉에겐 비록 브루노아의 감정을 노출시키는 일은 많았지만.-순전히 자기가 그렇다고 느끼다니 보다는, 아마 이렇지 않을까, 하고 머릿속에서 충동적으로 생각되어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이기는 하였지만
거울을 보며 가끔 자신을 향해 웃어볼 때가 있다.
물론 그건 손가락으로 입가를 끌어올려 만든 인위적인 웃음이었다.
그럴때면 거울속의 자신은 어김없이 자신을 향해 썩은 미소를 지어주는 것 같았다.
레티가 홍차 컵을 두손으로 살짝 쥐었다. 아마 이제 막 내와서 열기가 가시지 않아 그럴 것이다.
케이오시움에 관한 정보와, 2000년대 때의 자료들, 특히나 저번 수첩, 일지에 관련해 주인에 대한 정보를 더 얻기 위해선 우선 정보가 많은 자를 찾아야했다.
무모할 정도로의 이상한 실험들이었다. 이넉의 비행정에서, 낡은 오토마타들과 관련 책, 그외 기타 요상스런 것들을 옮기는 와중에도 온갖 해괴한 생각이 들 정도로.
이것저것 입증이 되지 않은 2000년대라서 그럴까, 이것저것 일이 많은 혼란의 시기여서 그랬던 걸까.
오필리어는 이넉의 동의를 구하고, 책과 수첩-연구일지일 뿐이겠지만- 몇개를 자신이 지녔다. 자신이 생각해도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오염자의 치료, 아니 정확히는 다시 그냥 정화시키는 것.
오필리어는 연구일지를 읽을때마다 자신이 브루노아가 되는 기분은 일순간에만 잠시 느꼈다.
손에 일지가 쥐어져 있을때면 그는 다시 돌아가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말 조금의 희망일지라도, 그에게는 잡을 것이 있다는것이, 따라갈 빛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것이 해결된다.
자신의 이 무감각한 것도 잊혀질 것이고, 아마 거기서 여기서 얻은 많은 정보들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점이 있다면 황혼의 시대였다.
지금 현 시점과는 완벽이 다르다. 무려 천년이나 오백년 정도의 세월이 가로막고 있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문자도 많았고, 되려 자신이 다른 정보상에게서 정보를 사는 일도 있었다.
오필리어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자신과 지나쳐왔던 모두의 얼굴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듯 했다.
이브, 아담, 데니, 동료들의 얼굴, 모두의 얼굴이 아직까지도, 브루노아의 뇌 속에서는 살아 있었다.
점차 그 기억이 세월에 의해서 희미해져 가는 것은 당연히 슬픈 일이었고
오필리어는 그 얼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일지를 붙잡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매우 희미한 가능성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만큼 자신이 더 끌어당기면 될 터이다.
그럼 그 가능성은 자신에게 반응해줄 것이다.
안된다면 더욱 더 강한 자력으로 끌어당기면 된다.
비록 괴물같은 능력이었지만, 오필리어는 이 능력을 없애기 위해 능력을 활용했다, 응용했다.
모순 되는 일일지라도, 이미 점칠된 자신에게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황혼의 시대 일을 돕기 위해, 정보상의 일과는 별개로 오필리어는 레티를 이용했다.
레티는 자신이 판데모니움으로 온 걸 도왔기에 그저 이건 조력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니 오필리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티를 이용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게끔, 레티도, 자신도 만들어서. 그런 합리화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관념을 이루기 위해, 못할것이 없는 그였으니까.
이후로 레티는, 자신과 이넉이 거주하는 이곳에 한달에 두번 가량으로 방문했다.
레티에게 위험한 일은 맡기지 않는다, 자신도 양심이란게 있고 한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니까.
이 소녀에게 맡기는 것은, 간단한 문서 탐색작업이나, 문자 해독이나, 엔지니어들을 찾아가 물어보는 것, 정도들이었다.
그다지 어려운일은 아니었기에, 레티도 그나마 납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레티가 자신의 얼굴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는것이 느껴졌다.
그런가, 그것도 꿈이었나.
요새 부쩍 죽은듯이 방에 틀어박혀, 가만히 있기 때문일까.
이미 몇번이고 내동댕이 쳐지고, 손에서 구겨질대로 구겨진 헌 종이가 손 안에서 너덜거렸다.
아마 자신의 꼴은, 보기 힘들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이란게-아니 껍데기란게 워낙 질겨서인지, 이틀을 굶고, 내리 잠을 잔 것만으로는 쉽사리 죽진 않는 모양이었다.
이넉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수건에 물을 적셔서 왔다.
그리고는 손에 있던 일보지를 들어 갈갈이 찢어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어차피 치우는건 자신일텐데. 오필리어는 이넉의 쓸데없는 행동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 의미를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래 오늘이 레티가 오늘 날이었구나.
목은 이미 갈라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레티의 팔을 붙잡았다.
아니 붙잡았단 표현도 ㅡ틀렸다. 자신에겐 그럴만한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붙잡고 지탱하려던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눈 앞에 찢어진 일보지의 조각들이 보였다.
"아아...아아아"
목에서 괴이한 소리가 나왔다.
오필리어는 무의식적으로 바닥을 긁어 조각들을 모았다.
1면의 대문짝마한 사진을, 글자를 , 오필리어는 이틀동안 매일같이 자신이 보았던 그 상태 그대로 퍼즐처럼 맞추었다.
손톱이 세게 바닥의 타일 이음새에 부딪히고,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손톱이 있어야 할 자리에, 훤히 살이 드러나 공기와 접촉했다.
찢어진 조각들이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그림들이, 활자들이 붉은색으로 변해 알아보기 힘들어지고, 점점 맞추기 힘들어졌다
순식간의 일이라, 그 누구도 말릴 틈새가 없었을 것이다.
레티가 작게 비명을 지르곤 오필리어를 강제로 일으켰다.
4년전보단, 소녀는 많이 컸다. 나이가 나이랄지도 있지만, 여자아이라 조금은 많이 자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녀는 성인 남성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런 소녀가 쉽게 끌어올려, 강제로 말릴 수 있었다는 것.
오필리어는 자신의 상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배고픔, 탈수증상, 수면 중독,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커다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스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서두르지 않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좀 더 많은 것을 알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좀 더 능력을 잘 활용 하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오필리어는 손에서 아무 철조각을 하나 만들어 거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자신에게는 그냥 걸어간 것일뿐이겠지만, 남들의 눈에는 분명 위태롭게 보였을 것이다.
무언가의 손잡이로 보이는 듯한 철이, 손 안에서 기분 좋게 잡혔다.
거울 속의 자신은,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슬퍼? 내가 너의 이상을 이루어주지 못해서 슬퍼 브루노아?"
오필리어는 철조각으로 자신의 얼굴이 있는 거울을 강타했다.
거울이 거미줄 모양으로 아름답게 조각나서, 자신의 얼굴이 조각나 여러갈래로 비쳤다.
조각 하나하나에 자신의 찢겨진 얼굴이 들어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화내는듯한, 그런 일그러진 눈썹에 오필리어는 몸을 떨었다.
거울 속의 자신이, 자신을 깨부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오필리어가 눈을 크게 뜨고,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았다.
거울 속의 자신은, 그것이 슬프고 비통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덩달아 자신을 째려보았다.
브루노아에게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돌아갈 곳이 없으면 죽어!!!!!!!!!!!!!!!!!"
오필리어는 철조각을 더욱 강하게 쥐고 거울을 깨부쉈다.
거울의 파편이, 튀어서 자신의 몸에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넉이 자신의 양 팔을 붙잡아오는게 느껴졌다.
산산 조각난 거울, 그 곳에 약간이나마 남아 달라붙어 있는 파편들에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거울 파편에 온 몸이 찔린 자신은, 실성한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걸 느꼈다.
그래, 이건 죽음이다.
죽음이 자신의 옆에서 꼬리치고 있었다.
오필리어는, 그 죽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품 속에 안았다.
이번에는 빠져 나가질 않길.
차가운 물이 턱을 흘러 목덜미에 닿자, 차가움에 몸을 떨며 일어났다.
눈에 무언가가 올려지는게 느껴졌다. 그건 황급히 치워져 시야를 다시 뜨이게 했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은것이 지금 오필리어의 상태였다.
이넉이 물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던 것일까,
이넉은 물수건을 들고, 조금은 놀란듯 하지만 침착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벌려 목소리를 내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까 죽은 것이 맞다면, 이건 목이 상해서 나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마음이 닫혀 거기서부터 올라오는 목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을 또 놓쳤다.
남들에겐 다 통상적으로 찾아오는 것인데,
자신이 그것을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됨으로써 오필리어는 끝이 없는 절망감을 맛봤다.
죽음이 찾아오는 시간보다, 자신이 파란 알맹이의 형태로 남아 껍데기를 다시 찾는 것이 더 빨랐다.
쓸데 없이 강하게 오염되어, 자신의 몸 깊숙히 자리잡은 케이오시움은 이제 죽음으로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정확힌 죽음은 찾아오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여러갈래로 갈린 인과중에서 하나의 결과를 없앨 뿐이다.
자신은 항상 죽는다.
자신의 본질인 케이오시움을 없앨 방법이 절실했다.
돌아갈 곳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세상따위, 등지고 싶었다.
하나 남은 희미한 빛마저 꺼져버리자, 자신은 그저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질 뿐이다.
출구가 없는 미로는 빠져 나갈 수 없다.
평등하게 되면 된다, 누구와 평등하게 되면 되는 거지? 기준의 잣대가 없어져버렸다.
평등하게 되어서 돌아가면 된다, 어디로 돌아가면 되지? 남은 동료들에게?
아쉽게도 레지먼트는 모두 전멸이다. 자신이 알던 그 모두는 죽음을 품에 안고 돌아갔다.
돌아갈 곳도, 자신을 받아줄 곳도 없다.
방 한구석에서 여자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딱딱함을 자랑하는 목소리와, 공기가 빠지는 소리 등으로 보아서는 또 이넉의 것이겠지.
여자의 목소리가, 레티의 이름을 거론하며 많이 놀랐다는 등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렇겠지,
자신이 죽은 후로 자신은 바로 푸른빛의 누멘 상태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넉에게도 한번밖에 보여준 적이 없었다.
런 추한 상태를 레티에게 보여준 것이다.
가능성이 모임으로써, 흔들리는 케이오시움으로써의 상태를.
오염자로써의 면모를, 자신에게 희망을 보여준 사람에게 보여주다니, 오필리어도 레티의 심정이 어떨지는 정확히 모른다. 아마 지금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머리로만 이해 할 뿐이다.
"...시체..는?"
간신히 마음을 열어서 목소리를 냈다.
아까처럼 쩍쩍 갈라진 목소리일 줄로만 알았지만.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는 멀쩡했다. 아니 목소리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건강했다. 마치 무언가 변하기라도 했어? 라고 오필리어를 농락하기라도 하는 것 마냥.
여성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자신의 등 뒤로 울렸다.
아마 기기나 자판이 침대 뒷쪽에 자리 잡은 것이겠지.
여성은 활자를 하나하나씩 읽는 듯이 언제나 그랬듯이 불에 태웠다고 알려주었다.
불에 태웠다, 마치 화장이라도 하는 듯한, 그러니까 장례식이라도 치룬 것 같은 오묘한 느낌에 욀리어는 몸을 일으켜, 침대 맡에 위태롭게 걸쳐놓았다.
안정적으로 기대어져 있는 몸이었지만, 실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었다.
오필리어가 느끼는 좌절감,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큰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 사람은 눈물도 헛웃음도 아무것도 나지 않는다 했던가
돈이 없다면 사기라도 쳐볼 것이고, 누군가에 의해 꿈이 좌절되었다면, 자신을 위한 복수라도 할 것인데. 물론 돌아갈 곳을 만들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동등하게 되지 못한 자신은 의미가 없다.
그곳에 행복이 찾아와도, 그것이 자신이 불러온 가능성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곳에 불행이 찾아와도, 자신만은 그것을 회피해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기에, 오필리어는 새로운 어딘가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 하리란걸 알고있다. 새로운 미망인이 끼어들때, 원래 있던 자들의 혐오하는 그 표정들을, 오필리어는 어렸을때 겪어봐서 알고있다.
자기가 간절히 바라는 것. 마음속에서 그것만을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어야만 그래도 어둠속에서도 자신의 본능으로, 감으로라도 길을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출구가 없는 미로의 끝은 그냥 캄캄한 어둠일 뿐이다.
그래, 그 어둠은 죽음, 죽음을 뜻했다.
자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이곳에서 도피하고 싶은 것이다.
거울 파편과, 일보지의 조각들은 이넉이 이미 치워놓은 듯 했다.
치우면서 저 기계도 같이 들여놓은 것이겠지,
그는 아마 자신을 계속해서 주시해야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이다.
자신은 지금 위태한 상태니까, 그건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았다. 자신이 관련되어 있는, 교류적인 면모가 전혀 없는 감정은 누구보다 잘 아는게 당연했으니까.
오필리어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끌고 자신의 책상 앞으로 갔다.
땅을 밟아본것이 어색하기라도 하단 듯이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어색했다.
수많은 정보들이 흐드러지게 엮어져 있는 곳에서, 딱 하나만이 손때가 묻은채로 반듯하게 놓여져있었다. 그만큼 자신이 많이 보았다는 증거.
오필리어는 손으로 한쪽 면이 격자철로 박혀져있는 종이뭉치들을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활자 그대로 또박또박 읽었다.
자신이 여태껏 해왔던 것들, 전부 쓸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 죽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써서라도....."
목적이 바뀌었다. 출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둠속에 잠식당하기 위해서, 하던 일은 같다. 다만 목적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눈을 감고, 거울 속에 있던 브루노아의 모습을 그리면서, 오필리어는 다짐했다.
"이번엔 늦거나, 활용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오필리어는 이넉에게 레티를 불러달라고 했다.
이제 자료 수집은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레티에겐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이용할 생각이었다.
자신은, 최대한 가능성을 끌어모으는 것,
괴물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자신도 괴물이 되어야한다. 고 오필리어는 생각했다.
판데모니움에는 소문이 떠돌았다.
정보상이 모두 사라졌다는 소문.
아니 실제로 사람들은 정보상이란게 실제로 존재했냐는 것 조차도 의문스러워 했지만.
정보가 권력인 지금의 세력가들은 그 누구보다 불안해 했다.
자신이 직접 휘하에 둔 정보원이 아닌 이상 이제 고급정보는 어디서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 이 말인즉슨 소문은 사실이었다.
판데모니움 속에 몇명이나 있었는지 모를 정보상들은 하나 둘씩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상에 정보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얼마 없을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의 기득권층, 오로지 윗사람들만이 그 소문을 불안해 했다.
밑계층의 사람들은 그것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건 그들에게 있어서는 소문에 불과한 것이다.
이넉은 시신의 팔을 벽난로에 집어넣으며, 신문을 한 장 넘기는 오필리어를 바라보았다.
"장작대신 시체를 쓰니까 냄새가 고약하긴 하네"
이넉은 그 말을 듣고는 기계판으로 몸을 돌려 버튼을 조작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이넉의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기능을 했다.
불 타는 소리를 청명히 가르며 여자의 목소리가 왜, 라는 짧은 단어를 내뱉었다.
"...다른 사람의 시체도 아니고 내 시체잖아? 그들을 죽이는 고약한 짓은 안해."
오필리어는 무덤덤하게 불쏘시개로 말없이 익어만 가는 자신의 팔을 꾹꾹 눌렀다.
이넉이 이자신에게 이 말을 묻고있는게 아닌 것 즈음은 알고 있다.
자신이 하지 않았을때는 대신해서 자신의 껍데기를 맡아주었던 이넉이다.
이런걸로 트집 잡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있다.
이넉이 묻는 것은, 그래 지금 판데모니움에 돌고 있는 소문에 관련되어있는 것.
그래, 정보상을 처리한건 자신이다.
오필리어에겐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자신이 아는 만큼 넓혀지는 가능성에, 오필리어는 다른 자의 정보마저 빼돌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 지금 오필리어는 어떻든 상관없었다.
레티에겐 황혼의 시대의 문서를 맡겼고,
자신이 맡아 했던 접대는 모두 다시 이넉에게 돌렸다.
이넉은 그것에 매우 껄끄러워 하는 눈치였지만, 이넉은 오필리어의 상태를 잘 알고있기에 반박하진 않았다.
그날 이후로 오필리어는 바뀌었다.
무언가에 혈안이 되어있는 듯, 그게 이넉의 평가였다.
오필리어는 후회하고 싶지 않은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상을 없앰으로써 모든 정보는 이넉의 손을 거치게 되었다. 오필리어의 예상대로였다.
정보상이란 아무래도 뒷 쪽이 찝찝한 직업, 그걸로 윗 쪽에서도 무어라 할 자격은 없는 것.
만약 윗 쪽에서 무슨 지시를 내린다면 그것은 소문을 인정해 버리는 것이었다.
자신의 비리, 자신의 권위, 자신의 명예를 위해 뒷 세계의 인력을 끌었다는 사실을.
아니, 솔직히 안심하는 몇몇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의 약점을 가진 사람들, 자신의 꼬투리가 잡힌 사람들이 세상에서 없어진 것이다.
모순되는 상황이었지만, 분명히 그랬다.
모두는 그들이 없어짐에 불안해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안심하고 있었다.
없어진 그들을 찾아 줄 리가 없었다. 되려 그들을 없앤 자신에게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필리어는 정보를 교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돈 이외의 다른 것도 요구했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자신의 죽음을 성사시키기 위한, 이론을 더욱 더 뒷받침 하는 것들.
오필리어는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었다.
쥐꼬리만한 희박한 가능성을, 그 어떤 잔혹한 짓이라도 일삼아서 확장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로 나타나던 상관없었다.
자신마저 다시 되돌려 내는 이 괴물같은 힘이라면, 살고 싶다는 무의식을 가능성으로 재현시켜 불러들여오는 이 괴물 같은 힘이라면, 어떤 결과든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필리어는 레티와 이넉이 긁어모은 자료들과, 자신이 늘 가지고 다니는 연구일지를 가방 속에 품고 밖으로 나섰다.
'오필리어'라는 접대상의 정보상은 사라졌다.
자신마저도 감추어서 소문에 더욱 입지를 단단히 다지는 것
윗 계층에게서의 소문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더 높히는 것.
오필리어는 예전에 입던 정갈한 복장이 아닌 조금은 엔지니어 같은 옷을 입고는, 후드와 같은 숄로 머릿빛을 가렸다.
이곳에서 자신의 칙칙한 머리색은 금방 들통날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필리어는 죽은 사람으로써, 매일같이 자료를 들곤 도서관으로 향했다.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서, 더욱 더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선 자신은 끊임없이 알아야 했다. 기억해야만 했다. 죽기 전까지의 자신은 기억하기 위한 껍데기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지 않아, 먼지가 자욱한 도서관.
오필리어는 이넉의 정보의 대가로 얻어낸 허위 자격증으로 덤덤히 도서관을 통과했다.
그리고 늘상 있던 황혼의 시대의 자료가 분류된 곳, 자신이 책들을 뽑아서 쌓아둔곳.
항상 앉던 곳에만 먼지가 쌓여있지 않았고, 언제나 오필리어는 그 자리에 앉아, 뽑아 쌓아둔 책에서 몇 권을 뽑아 서철로 찍힌 자료들과 비교하거나 펜으로 필기를 해가며 정보를 알아갔다. 기억해 갔다.
밝은 채도의 머리를 가진 남자가, 도서관의 문을 열고 자신을 찾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기간이 지나지는 않았다.
자신을 찾는 남자의 호령에, 오필리어는 책을 읽던 자세 그대로 살풋 미소를 지었다.
이넉이 제 값을 치루고는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준걸까.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며, 오필리어는 연구일지를 가방속에 숨기고는 일어났다.
"나를 찾고 있었는가, 도케르"
"그대에게서 알아낼 정보가 있다. 대가는 어떻게든 치르도록 하지."
드디어 자신의 능력이 결실을 이룬 것이다.
오필리어는 책 한권을 집고있던 손으로, 저 자 모르고 엄지손가락으로 책의 커버를 쓸었다.
2803년, 연구일지. 도케르
자신의 손 끝에서 금박으로 세밀히 박힌 글자가 점자라도 되는 것처럼 스며 들어 오는 것 같았다.
이제, 이제 다 되어간다는 묘한 흥분감이 오필리어의 몸을 떨게 했다.
난데없이 2000년대에서 이곳으로 툭 떨어져버린 남자는 혼란스러워했던게 분명하다.
아니 자신도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실제로 자신의 능력이 그만큼의 성과를 낼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2700년대 사람을 이 곳으로 올 수 있게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간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것 아닌가.
오필리어는 흐름을 바꾸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들로 소문을 없애고, 다시 세상에 '오필리어'라는 존재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미 많이 줄어버린 정보인들의 수는 어쩔 수 없었기에 오필리어의 힘은 그대로였다.
오필리어는 중립인으로써의 기분을 만끽했다.
서로 자신을 죽이려고 하지만, 되려 서로를 견제하기에 바빠 자신에겐 신경 쓰지 못한다.
되려 서로의 약한 부분을 어떻게든 자신에게서 잡아내려고 안달이었다.
중립은 정점과 같다. 어느 쪽이든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느 쪽과도 개연성이 없다는 것. 혼자서 초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실상 서로가 아등바등 싸우는 것만 지켜보면 되는 정점과도 같은 위치였다.
그렇게 들어오는 돈이나 지원으로 오필리어는 도케르에게 기기를 만들 장비들과 재료들을 가져다 주었다. 물론 그가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오필리어는 이 자를 끝까지 이용해 먹을 심산이었다. 이미 그렇게 결심한 자신이었다. 4년전부터, 이것을 위해서 자신은 그 모든 것을 행해온 것이다.
기계에 관한 것은, 이넉의 엔지니어와의 연줄이 닿은 결과였다.
애초에 레티가 정리에 힘써준 탓도 있었지만.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든 이룰 수 있게끔, 훌륭히 재 연출해낸 그가 고맙고도 대단했다.
기이하게 주황빛으로 빛나는 기계는 방 한칸을 점령할 정도로 매우 컸다.
항상 동력이 부족하거나, 부품이 모자란 경우라면 도케르에게 말하면 그는 뒷목을 한번 긁고는 알겠네, 라며 다시 도구들을 챙겨 기계를 보러갔다.
그러면 이넉이 커피 몇 개를 챙겨 기기가 있는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빈 손으로 나오곤 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부품의 작은 결 하나하나라도 다 훑는 것 마냥 그는 세밀하게 작업했다.
그가 수리를 마치길 기다리며 신문을 읽다가 잠이 들었을때면, 그가 항상 졸린 눈으로 새벽에 내 얼굴을 덮고있던 신문을 내리고는, 다 됐네, 라며 소파에 쓰러진 듯이 잠을 청했다.
물론 언제나 정상적으로 작동한 적은 적었지만, 그럴때마다 그 다음날 까지는 이 곳에 들리는 모두는 내버려 두었다.
그래 그 조잡한 몇 번의 성공으로 자신의 케이오시움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정화되어가고 있었고. 그것은 자신을 위해 이용당하며 고생하고 있는 그를 위한 작은 포상이었다.
덜그럭 거리며, 서서히 빛이 꺼지는 기기를 보고는, 회로를 다시 다 뽑아 놓고는, 빈 커피잔 몇 개를 들고 다시 방 밖으로 나왔다.
이넉이 정리해놓은 몇 몇 가지 식재료들 옆으로 이제 바닥을 보이는 커피통을 보았다.
이넉과 자신이 먹기에는 1년 정도가 걸렸는데, 오필리어는 다 빈 커피 잔 네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진하게 먹는 건지, 아니면 이넉이 그냥 빨리 처리하기 위해 그렇게 탄 것일 뿐인지.
이넉만 있을 때의 이 집과, 자신이 들어오고 난 후의 이 집과, 그리고 도케르가 들어오고 난 후의 이집의 변동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이든간에 눈에 띄게 확 줄고있었고, 무엇이든간에 어떤것은 눈에 띄게 확 늘고있었고.
무언가가 없어지기도 하고 다시 생기기도 하고.
오필리어는 묘한 기분에 몸을 소스라치게 사리며 소파 앞으로 향했다.
소파 옆에 붙은 거울이 달빛에 반사되어서 조금은 눈부시게 빛났다.
편한 복장을 한 자신이, 조금은 미소 짓는 듯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근래엔 거울을 볼 일이 없었긴 하다만은, 4년 전과는 많이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오필리어는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지금은 입을 조금 벌리고 놀란 듯한 표정이다.
오필리어는 무의식적으로 거울을 향해 중얼거렸다.
"행복한거야, 오필리어?"
그래, 지금으로 충분했다.
자신이 죽음 전에 마지막으로 겪는 경험은 이것이면 만족했다.
죽음이 자신의 품안에 들어왔다. 앞으로 진짜 얼마 남지 않았어.
품에 안긴 검은색의 물체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마지막"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넉의 목소리에 오필리어는 의자에 앉은채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날따라 들어온 햇빛으로 인해 이넉의 짙은 머리카락이 연한 빛으로 비추는 듯 보였다.
이넉이 목을 한번 쓰다듬고는, 한쪽의 기기판으로 가 버튼을 몇 개 조작했다.
전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워진 여성의 목소리가 마지막 보고서라는 것을 알렸다.
"마지막이라니, 어디 가?"
이넉은 그에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오며 말없이 고개만을 끄덕였을 뿐이다.
자신과 같은 색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조금의 서운함이 담겨있는 듯 했다.
아마 그건 자신도 같을 것이라고,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확인했다.
"집으로 돌아갈꺼야"
기기판쪽으로 다시 되돌아 가기에는 지쳤던 모양인지, 이넉은 목을 붙잡고 갈라진 목소리로 의사를 전달했다.
예전부터 자신의 능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계속해서 자각시키는 이넉의 행동은 이런 것이었나. 오필리어는 마음속에서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앞당겨져 오는 것을 느꼈다.
책상 옆의 작은 거울을 보면서 , 브루노아에게, 요새 많이 본다, 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필리어는 작은 메모지 한 개와 펜을 건네주며, 서신이라도 보내게, 라며 짧게 대꾸했다.
이넉은 몇 분을 턱을 쥐고 고민하더니 작은 글씨로 메모지에 띄엄띄엄 쓰기 시작했다.
매번 봐서 익숙한 글씨임에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낯설어 보였다.
주소는 제국도, 루비오나도, 마이오카도 아닌 독특한 곳이었다.
아마 부랑하고 있는 곳의 집단 거주지라도 되는 걸까, 라고 대충 넘기며 주소를 눈으로 읽었다.
"....에녹?"
밑에 낯설어보이는 글씨로 , 자신의 이름을 써놓은 것에 오필리어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영어로는.....발음이 다르니까"
오필리어는 메모지를 서랍 속에 집어넣고, 마지막에서야 제대로 불러준다는 말을 덧붙였다.
에녹이 오필리어의 책상위에 만년필로 알파벳을 새기는 것을 오필리어는 그대로 보고 있었다.
오필리어는 커피통에 있는 커피를 모두 버리고 새로 살 것을, 결심했다.
남은 사람들이 쉽게 정리할 수 있게끔, 이대로의 잔재를 가지고 죽음에 들면 무언가 브루노아가 조금은 슬퍼할 것 같아서 조금 더 행복하게 죽음에 들기 위해서.
오필리어는 저택 옆의 빈 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죽고싶었다, 그리고 이제 실현할 수 있다.
그 전에 마지막의 인사라도 해야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오필리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곳의 그들과 교류하지 못할 것은 알고 있다.
그들과 다르다는 것은 더욱 더 잘 알고 있다.
오필리어는 구질구질하게 이런 것에 매달리고 싶진 않았다.
이제와서야 새 가족이나, 동료를 만들고 싶다는 알량한 생각 또한 없었다.
자신의 신념은 항상 고수하고 싶었다. 자신의 신념만큼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과는 이야기 하나라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래봤자 자신과 다를 것이 분명했기에
자신의 이 생각이 맞다는 것이, 확실하기에.
세상이 버린 오필리어에겐 선택지란 두개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아등바등 치졸하게 살아보는 것과, 그냥 세계를 등지는 것.
아등바등 살아보는 것에 오필리어는 지쳤다. 다신 후회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지친 감정에 자신은 후회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모두 그르치기는 싫었다.
그래, 자신은 그 지친 감정을 이끌고 이곳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이다.
무언가 자잘한 변화가 있는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아버지, 형제들. 모두 상관없었다.
마지막을 고하려고 찾아오지 않았다. 이제 함께 할 수 있다는 약속을 하러 온 것.
그 약속에서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필리어는 빈 부지 앞으로 휘청휘청 걸어나갔다.
아직까지도 어머니의 잔재가 남아있는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기억이 담긴 곳이었다.
아직 시간이 미처 흐르지 않은 다른 공간에서는, 여기서 자신은 웃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필리어는 머리를 가리고 있던 후드를 내리고는, 땅 앞에 무릎을 꿇었다.
검은 흙 위로 푸른 잔디가 드문드문 나있었다.
마치 다른 곳의 잔디와는 다르게, 급하게 날조해 붙인 듯한 어색함이, 그날의 사건을 나타내고 있었다.
오필리어는 잔디가 있는 부분을 선별해서, 없는 부분의 흙을 조금 한 줌 쥐었다.
촉촉한 검은 흙이, 손가락 너머의 신경들에 의해 뇌까지 생생하게 전달해왔다.
에녹이 떠남으로써, 조금은 뿌옇게 안개가 낀 가슴속이 조금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란 나약했다. 자존심, 존엄, 그들이 항상 승승장구 하던 것들이지만. 막상 어떤 상황이 된다면 그들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다.
고고한 절개? 애국심? 그런 사람들이 옳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되려 멍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을 먹기 위해 우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떨어져 버린 인간들은.
위에서 작은 지푸라기 하나라도 내려오면 필사적으로 붙잡고 매달리는 법이다.
그들이 허풍을 떨며 가식스럽게 말하는 것은 모두 우물 밑에 던지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오필리어는 흙을 손가락 뿐만이 아닌, 손바닥 전체를 이용해서 힘껏 움켜쥐었다.
어머니의 재였다. 어머니가 있는 흙이었다.
흙은 어머니였다.
흙을 코 앞으로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물에 젖은 흙의 냄새밖에 나지 않았지만, 오필리어는 그것으로 그냥 만족했다.
소설이나 매체에서처럼 어머니의 향이나, 그리운 냄새따위 나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 표현은 매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되려 기대를 어긋난 현세적인 감각에 오필리어는 다시금 지금 상황에서 이탈할 수 있는 듯했다.
"누구야?"
오필리어는 흙을 다시 땅 위에 뿌리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연한 갈색 머릿빛의, 여자가, 이제 막 창문을 연 듯 창문을 한쪽 손으로 짚고는 서 있었다.
아마 1층, 마당으로 나있는 창문이라면, 서재나 아님 아버지의 방이겠지.
시녀로 보이기엔, 단아하면서도 비싼 재질로 만들어진 일상복.
그리고 일을 한다면, 손이 거칠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음으로 보아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부인이거나, 아니면 그의 자제.
여자의 오라는 손짓에 오필리어는 흙을 바지에 털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별 위해가 되어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관련 있는 인물이었다.
디거너츠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신뢰도는 오필리어에게 누락된지 오래었다.
혹여나 저 여자도 아버지께서 보낸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발을 떼기를 주저했다.
"나는 호그스밀, 이곳의 다섯째 딸이야. 들어보지 않았을까?"
"모르겠네"
호그스밀이라고 자신을 지칭한 여자가, 창문턱에 팔을 올려, 턱을 괴었다.
낯선 방문객이 신기하기라도 한 것일까. 여자는 눈을 휘며 살풋이 웃었다.
호그스밀, 자신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이미 어머니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그에게 있어 당연히 기억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지. 자신이 생각나는 것은, 옛날 집이 있던 위치와 자신의 성 밖에 없었다.
이리 오지 않는거야? 라고 호그스밀이 잔망스럽게 말했다.
여자가 까르륵 웃는 소리는 오필리어에게 별다른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저 아버지의 덕을 녹록히 받아먹고 있는걸로 보아서는, 그래도 상위 계층의 집안이 아닐까, 하는 추측성의 생각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래, 그쪽의 이름은 뭐야?"
"..오필리어"
오필리어는 여자에게 자신의 이름정도는 알려주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자신의 이 더러운 집안에서 만나는 마지막 인연일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조금 서글플지도 모른다. 고 오필리어는 생각했다.
그래, 마지막인데, 이런 여자아이에게 자신의 이름 정도는 무대가로 알려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오필리어? 오필리어 브루노아?"
호그스밀이 난데없이 갑자기 일어서며 신기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에게서 들었던걸까,
아니면 사망신고서가 집으로 날아온걸 호그스밀이 보았던 걸까.
아니 어쩌면 정말 허례허식으로 장례를 치루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허례허식일 뿐이지만, 그래도 아버지란 작자는 그 겉보기를 중요시하던 사람이니까.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오필리어라면, 돈 받고 태어난 사람 아냐?
그런 이름을 장난으로 대다니 고약하네."
돈을 받다니?
갑작스런 호그스밀의 웃음소리에, 오필리어는 뒤돌아서 다시 돌아가려던 몸을 멈췄다.
돈을 받다니? 오필리어의 청명한 가슴속은 다시 뿌옇게 안개가 끼는 듯 했다.
더 이상은 들으면 안된다고, 귀와 마음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오필리어의 두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던 것이 진실이 아니길 빌며, 오필리어는 아까 그 검은 인조적인 흙 위로 쓰러졌다.
오필리어는 듣고 싶지 않았다. 두 귀를 양 손으로 틀어 막았다.
호그스밀의 두 눈이 더욱 더 커지더니, 이윽고 귀에 거슬릴 정도로 높은 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진짜 오필리어야? 진짜?? 하하하하하하하하 아버지가, 연구를 목적으로 케이오시움에 찌들리게 한 그 아이라고?"
오필리어는 칼로 귀를 파버리고 싶었다. 칼을 귀에 꼽아 돌려버리고 싶었다.
저 아이가 하는 모든 말은 거짓이다. 그렇게 오필리어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주위는 비록 맑았지만, 맑은 밤 날씨였지만, 오필리어는 주위에 안개가 가득히 끼는 것 같았다.
경추부터 흉추까지, 모든 주위의 안개가 자신의 몸을 타고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체감온도는 마치 영하로 내려간 듯 한, 냉소적인 듯한 체온에, 이빨이 덜덜 떨렸다.
"그래, 오필리어! 케이오시움은 어때? 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든 그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다.
어차피 죽을 몸이었다, 그냥 이대로, 그냥 좋은 기억을 품고 가면 안 되었던 것일까
꼭 이렇게 세계를 잔인하게 비추어놓고 자신은 가야하는 명목이라도 있는걸까?
자신은 그저 약조를 하러 왔을 뿐이었다.
어머니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조.
그냥 그 뿐이면 족하였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에 나타나, 모든 사실을, 약조를 깨트려버린 저 여자가 미웠다.
아니, 실제로 잘못한 것은 저 여자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누구와 약조하려고 했던 것이지? 그 약조가 이제 의미가 있나?
그제서야 부랑민인 어머니가 어째서 아버지의 저택 옆에서 살 수 있게 되었는지, 하루하루 겨우 점을 보러 나간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래, 거울. 그 거울은 어머니께서 자신을 위해 있던 거울이 아니었다.
오로지 브루노아만의 영광, 브루노아만의 대의, 그리고 어머니 자신의 안위를 위해.
"꺄아아아아악"
능력을 보여 달라고 조잘대던 여자의 머리 위에, 한 움큼의 붉음이 점점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푸른 취광빛의 가능성을 불러 들여 온 걸지도 모른다.
호그스밀은 이윽고 붉은 자취에 감싸고, 온 저택이 붉은 빛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죽어주게나, 오필리어."
그게 오필리어가 붉은 빛의 저택에서 빠져나온 후 들은 말이었다.
이건 난생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벌인 것일까.
이제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자신에게서, 이젠 그 마지막마저 빼앗아 가려는 것일까.
수리공의 얼굴에는 분노와 절망이 한 아름 담겨 있었다.
아아, 그래 너마저도 이젠 나를 절망시키려고 하는거구나.
벽에 세게 맞닿은 등에서 고통이 흘러나왔다.
잡힌 어깨는 움직일 수 없었다. 심장 속으로 날카로운 드라이버의 차가운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드라이버는 뼈에 몇번 부딪히다 끼긱 소리를 내며 심장 속으로 다시 돌진하기 시작했다.
뼈에 금이 간 것 같았다. 뼈가 한쪽이 으스러져 기울어져 가는게 느껴졌다.
드라이버와 함께 같이 들어온 차가운 공기는 심장에 맣닿아 심장을 더 천천기 움츠러 들게 했다.
나는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왜 그때 하필이면 내가 너의 연구일지를 책상에 놓고 간 것인지, 하필 그때 네가 들어가서 그것을 보게 된 것일까.
왜 하필이면 그렇게 큰 절망을 맛보고, 네가 이렇게 나에게 더 큰 절망을 보여주려 하는걸까.
그래 이것도 결국엔 내가 원한 결과다.
무의식적으로 브루노아가 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거울을 응시했다.
그의 밝은 채도빛의 머리카락들이 남색의 옷 위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것 같았다. 마치 밤하늘 같았다.
그 위로 자신의 얼굴이 피로 물든채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표정이 바뀌었다. 절망하고 있는건 나 자신이었다. 거울속의 브루노아는 웃고 있었다.
진작에 저 거울도 박살내버리는 건데, 4년전의 자신을 생각하며 오필리어는 혀를 찼다.
드라이버가 완전히 심장을 관통한게 느껴졌다. 심장을 꿰뚫리는 감각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내 자신이 스스로 정복당한 느낌에 오필리어는 소름이 돋았다.
오필리어 브루노아, 셋이서 함께 있던 시간이 그리웠던거야?
죽음이라는 목표를 잊어버릴만큼, 그정도로 행복했거야?
껍데기에 불과하기에, 그들과는 교류도, 함께하지도 못하는데 그래도 좋았더거야?
그가 나한테 이용당하는 그 사실이 그렇게 끔찍하게도 싫었어?
본능적으로 칼 한자루의 가능성을 불러왔지만, 그를 찌르기까지의 힘은 터무니 없이 모자랐다.
정확히는 그를 찌를 수 없었다. 자기 내면의 브루노아는 강력하게 고집을 피우고있었다.
근 5년간 달려왔던 목표가, 그 찰나의 순간으로 이렇게 무너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
"난..너...도케르..."
너를 찌를 수 없어.
어찌됐든 브루노아는 자신이었고, 자신은 브루노아의 껍데기였다.
브루노아의 감성을 가지고, 브루노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5년전 우리는 둘다 똑같은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노려보는 그의 살기어린 눈빛에, 짙은 초록빛의 눈에서 그때의 물이 비추어 보였다.
이 사람은 물과 같았다.
익사 함으로써 자신과 브루노아를 두 사람으로 갈라놓았다면, 이 사람은 지금 브루노아와 자신을 동화시키게끔 하고 있었다.
이 순간에 동화되기는 싫었다. 이제야 겨우 어둠속에 잠식되기로 결심한 자신이었는데.
멋대로 기름을 짜 붉을 자기 멋대로 밝혀버린 브루노아가 미웠다.
아니 정확히는 브루노아가 아니었다 자기 내면이 싫었다.
밑도 끝도 없는 가학심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작별인사를 고하는 것만이 뚜렷하게 들렸다.
껍데기에서 빠져나온 오필리어는 주저앉아서 마치 스스로를 안아주듯이 두 어깨를 스스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공처럼 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둥글게 했다.
아직도 찔린 심장이 아픈 듯 했다.
고통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이제 죽음으로 다가서는 수단이 없어진것에 대한것과, 브루노아로써 그와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멋대로 돌아갈 곳을 정해놓고 돌아갈 곳이 또 없어졌다는 절망감.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애초에 브루노아와 껍데기인 자신으로 이분법적인 사고관념을 가지게 된 것부터 잘못되었다. 그래 그 자리에서 그냥 자신은 죽었어야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그때 그 자리에서 자신도 죽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오필리어는 흔들리는 몸으로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는 자신이 비치지 않았다.
자신이 비로소 누멘 상태라는 것을 깨닫았다. 눈 앞에 재구성 되는 가능성들이 아른거렸다.
자신은 어떤걸 선택하던 결과는 같은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오필리어는 비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실제로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재구성중인 상태가 이런건지는 모른다. 오필리어는 자신의 방이었던 방 문을 열었다.
기기의 동력을 발전시키는 장치가 놓여져 있었다.
오필리어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스위치를 올렸다. 당연히 작동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마지막 한번. 오필리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계속해서 스위치를 반복해서 켰지만, 기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말인 즉슨 기기에 남아있는 동력이 마지막 동력.
오필리어는 다시끔 지친 몸을 이끌고 기기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대로 자신은 좌절하기엔 일렀다.
자신의 능력은 조금밖에 남아있다. 다시끔 그런 여정을 하라고 하면, 이제는 그럴 가능성을 얻을 수 조차도 없었다. 자신이 완전히 고립 되는것은 아직까진 싫었다.
방 안의 시체를 아직 치우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고, 벽 뒤에 숨어 거울로 오필리어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눈 앞에 푸른빛의 발광물질이 떠다니는 것을 느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저것도 또한 자신일 것이다.
피부조직? 눈? 장기? 어쨌든 저 빛나면서 자신에게 들러붙어오는 희미한 조각들은 모두 자신을 다시 껍데기로 만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그가 브루노아의 입에 입을 맞추는 것이 보였다.
정확히는 껍데기, 브루노아를 담고 있던 껍데기.
하지만 그의 입맞춤을 받는 브루노아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평온해보였다.
뛰지도 않는 심장에, 손은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거울만이 그런 브루노아의 상태를 싸늘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오필리어는 동력원이 있는 방으로 도망치다 시피 숨었다.
입을 틀어막고, 벽에 기대어 바닥으로 점점 낙하해갔다.
그는 날 사랑했던 걸까,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 나를 위해서 그랬던걸까.
지금 그는 후회하고 있을까, 나를 죽인 것에 대해.
오필리어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턱에서 떨어지는 것을 알았다.
이젠 자신조차도 혼란스러웠다.
동력은 이제 서서히 꺼져가서 없을 것이다. 그를 뒤에서 찔렀으면, 그랬으면 남아있는 이 능력을 없앨 수라도 있었을까, 거울 속에서 비치던 브루노아를 뿌리쳤다면. 자기 자신을 뿌리쳤다면. 외톨이임을 인정했다면, 돌아갈 곳을 버리고, 어울리는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했다면. 자신의 품 안에서 떠나지 않게 그대로 가두어 놓았다면. 자신은 이렇게 혼란스러워 하지 않았을까.
지금 오필리어의 마음속에서 입 밖으로 형용할 수 있게끔 형상화 되어서 나오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미안....미안해 도케르,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오필리어는 자신의 앞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뒤로 동력원이 조용히 미미한 차가운 기계의 파장만을 내뿜고 있었다.
자신은 왜 쓸데없이 이렇게 거울을 많이 배치해둔 것일까.
그래 아마 브루노아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가증스럽기만 한 브루노아였다. 순간의 감정으로, 순간의 그런 쓸데 없는걸 되살려 기억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약조를 하러 가는게 아니었다. 그에게 그런 감정을 품게 하는게 아니었다.
이 모든건 브루노아가 원해서였을까, 아니 결국 브루노아는 자기 자신.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를 혼동을 가지고 오필리어는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자신의 모습을 짚었다.
브루노아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절망하고 있는 표정만이 거울에 선명하게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왜 진작에 깨닫지 못했을까.
브루노아는 자신, 자신은 브루노아. 그것이 설령 껍데기와 본질의 관계라고 해도 기억이, 감정선이 그 모든게 같은, 동일시되는 자신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자신을 질책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지금 오필리어 자신은 자책감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오필리어는 손에 작은 잭나이프 하나를 불러들였다.
아직까진 자그마한 가능성 하나라도 있었다.
그래, 자신을 죽이는 것.
모든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것.
오필리어는 목에 있는 핏줄을 향해 망설임도 없이 칼로 베었다.
제발 죽어.
오필리어는 자신의 배를 잭나이프로 찔렀다.
저번의 그가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느낌과 엇비슷해서,
저번의 그 여자가 자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느낌과 소름돋게 비슷해서 오필리어는 그 감각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제발 이제 죽어.
오필리어는 자신의 오른팔을 아밍소드로 잘라내었다.
왼손으로 검을 잡는 일에는 녹록치 않았다.
잘려버린 팔에서, 어깨의 뼈가 모두 나가는 느낌에 오필리어는 소스라치게 놀랬다.
레지멘트에서 팔이 잘린 많은 사람들을 보았음에도, 그들에게 그다지 공감하고 싶진 않았었다.
이걸 이런식으로 느끼게 되다니, 오필리어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떨어진 오른팔에 쓸쓸한 위로를 보탰다.
이제 제발...
오필리어는 자신의 쏟아져 나올 듯한 내장들을 한손으로 막았다.
정말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자신의 배를 갈라버린것은
찌르는 편이 그래도 깔끔하고, 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텐데.
눈 앞이 희뿌여졌다. 난생 처음으로 보는 자신의 내장이었다.
아무것도 먹지못해, 그저 비틀어져 버린 것 같은 소장 하나를 한손으로 만져보았다.
미끌거리기도 하면서도, 누르면 터져버릴것 같은 기분나쁨.
언제 자신은 쓰러졌던 것일까.
아직까지도 눈앞에 조금씩 보이는 푸른빛의 조각들로 인해 자신이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아차리고는, 눈 앞에 보이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척추가 그대로 뽑힌걸까.
허리 밑으로는 척추뼈와 골반뼈가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자신이 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토기가 올라오는듯 했지만, 지금 오필리어는 먹은 것이 없었기에 토해봤자 위액만 퀭하게 올라올 것이 분명했다.
오필리어는 무엇이든간에 게워내고 싶었다.
아니 그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배고프다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오필리어는 몸을 돌렸다.
쓰러져있는, 그래도 꽤나 양호해보이는 자신의 시체를 발로 밟았다.
오필리어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배를 움켜쥐었다.
배에서 비명을 지르는것 같았다.
오필리어는 시체 가까이 몸을 숙였다.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완벽하게...선을 넘었구나."
마지막 가능성,
그것이 나타날때까지.
오필리어는 자신의 목에 밧줄이 닿는 느낌에 팔을 움츠렸다.
거울 너머로 수없이 죽어버린 자신이 눈에 밟혔다.
머릿속 저 너머로 어떤 여자아이의 말이 들려오는 듯 했다.
"죽음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면, 어쩌겠어, 오필리어?"
시답지 않은 목소리에 오필리어는 코웃음을 치고 거울 너머의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마지막 오필리어는 눈 앞이 흐려져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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