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그 티켓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결국 혼자서 여행을 떠나.
...실은 내 미래를 보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이젠 어떻게 되든 좋다는 감정으로, 우체통에 작은 편지 하나를 집어넣었지.
흔히 사람들과 웃으며 말하던 로또번호도 아니었고, 땅문서라던가, 그 어떤 것도 아니었어.
몇일 전의 너 스스로는 알고 있을까?
내가 지금 놀랍게도 미래에 갈 수 있다는 선택지를 스스로 버리고, 다시 그 쓸쓸한 연구소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We're Still here.
2주 전의 너에게 주는 편지.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너랍니다. 베첼. 나는 너야.
글쎄, 너는 이제 막 조사를 시작할 즈음이겠지? 이 편지는 비록 과거로 돌아가 네게 도착할 일은 없겠지만.
일단은 네게 편지를 써봐.
아마 네가 이 편지를 읽을때면... 그냥 누가 또 욕설편지를 넣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게 분명하고? 그렇지?
항상 우편함에는 그런 편지만 있었잖아. 학계에서나 연구원들한테 맨날 받았고.
애석하게도 나는 진짜 너야. 어찌된 일인지 너는 모르겠지만. 뭐.. 놀랍게도 네 예상과는 다르게 나는 미래에 가보는건 실패했어.
믿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내가 너란 사실을 잠깐 증명해줄까나.
어디서부터 말할까, 네가 괴팍한 그 성격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놀림당한부분?
매번 동네 아이들한테 거짓말쟁이라느니, 소름끼친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며 따돌림 당했던거?
....뭐 아님 가족들에게서 심한 말을 들은 부분부터 할까나. 아니지, 이 정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부분아니냐?
네가 사회부적응자라는건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다 알고있을테니.
진짜 아무도 모를만한 얘기를 해보자고.
스무살부터 시작할까.
갓 스무살이 되고, 너는 아마 집안을 뛰쳐나와 작은 연구실에 들어가게 될 테지.
...뛰쳐나온 계기라. 가물가물해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집안 식구들의 그 이상한걸 보는듯한 시선이 싫어서 나온걸거야.
따지고 보면 그냥 가족으로서 아들이나 형제나 평범히 살아가기를 원했던것 뿐이지만. 한
창 모든 사람에게 거부받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네게는 엄청 큰 상처여겠지.
너는 어렸을때 봤던 큐레무를 쫓고있었고, 그 큐레무 때문에 연구를 시작했어, 정말 터무니 없는... 누군가에게는 환상이라고 불릴정도로
너무나 터무니없어서, 그것때문에 한참 마음고생하던 시기에 그 작은 연구실을 발견했었지?
연구소장은 백발의 늙은 할아버지로. 가끔 정신을 놓아서는 연구원들을 때리거나. 내쫓기도 했고.
....내쫓음 당했냐고? 물론이지만,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아도 될거같아. 연구원이 너 하나라는 사실은 적어도 여기에서 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웃는 이모티콘이 그려져 있다)
어렸을적, 희미하게 보았던 그 큐레무를 쫓아서 너는 그 괴팍한 영감님이랑 같이 연구를 시작하겠지.
큐레무가 실존하느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나는 답해줄 수 없어. 그렇지만.... 일단 끝까지 읽어.
좋은 영감님이야. 물론 알게된지는 4개월정도겠지만. 그래서 너는 정이 들고 싶어도 들지 못하겠지?
왜냐면 그 영감님은 네가 연구를 시작하고 4개월만에... 별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가버리니까.
너는 아직 엄청 어린나이지만... 그 영감님이 남긴 연구문서를 주섬주섬 챙기고.
그 허름한 폐가같던 집을 그 영감 손녀에게서 억지로 사서는 연구원들을 모을거야.
영감님을 알게된지는 얼마 안됐고, 그 노인에 대해서는 너만한 손녀가 하나 있다는 사실만 알테니까.
.....네가 마음에 들어했던건, 그저 영감의 연구였어.
그 손녀의 기분이라던가, 가족의 기분은 아마 배려하지 못했던거고. ......거기서 이미 넌 원성을 한번 듣고 가고. 이후에 후회하게 돼. 뭐..
지금도 충분히 후회는 하고있어.
연구원을 모으고, 너는 다시 그 박사의 흔적을 지운채로 처음부터 연구를 시작해나가.
네가 발견한건 무수하다고 말할 수 있어. 네가 노력을 쏟아부은만큼, 너는 많은걸 발견했어.
마치 무수한 우주에 있는 별중 그 하나를 찾아 이름을 붙이는 작업처럼, 너는 하나하나 발견한 모든 것들을 기록해 나갔어.
마지막으로 그 영감이 하고 싶었던걸 이뤄주고 싶었던걸까, 그 때의 나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었다는 생각이 드네.
넌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되겠지. 자신의 존재를 말야
................
그렇게 쓰여나갔던 연구지가,
네 노력이 담긴 연구들이 하룻밤 사이에 모두 훔쳐졌다는걸 알고는, 너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렸어.
범인이라. 한 둘이 아니었기에 나도 잘 몰라.
맨 처음은 그래, 그 영감이 먼저 시작한 연구였지.
그 영감의 연구는 당당하게 다른 연구소의 이름으로 학술지에 실렸어.
처음 시작하기가 어려울 뿐, 한번 시작하고 나면 또 하기는 쉬운지라.
너는 미안하다고 싹싹 빌어 연구를 훔쳐간 사람들을 다시 받아들였어. 미안하다며 울면서 사죄하는 동료가 안쓰러웠던 탓에.
그렇게 두번째로 네가 공들여서 컴퓨터에 쓰고있던 연구가 네 조수의 이름으로 학계에 제출된걸 보게 되었지.
거기에 이상한 소문이 나서 네 평판은 안좋아지고, 네 소문은 학계에서 안좋게 돌고. ....오히려 네 연구소는 연구소가 아니라 명성을 얻기위한 사람들이 모여서 네 연구를 갈취해갈 뿐이었어.
세번째는 파일철에 꽂아놨던 유적에 대한 연구, 네번째는....... 다섯번째, 여섯번째는.
넌 상냥함을 의심하게 돼.
때로는 배신 당하고, 때로는 상처 입어서, 너는 네 자신을 싫어하게 돼.
모든걸 포기한채로. 급기야 너는 현실과 타협해버렸지.
' 내 이름으로 냈다면 사람들이 그만큼 관심을 가져주고 주목을 끌 수 있었을까?'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자학적인 말이구나.
그러면서도 넌 큐레무를 만나고싶다거나. 그런 꿈을 포기하지 않았어. 그 영감처럼, 계속 꿈을 쫓다보면 찾을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했던거야.
그건 슬프지만, 이룰 수 없는것이라고 말한다면...?
편지로도, 듣고싶지 않은 말이겠지.
담배인지 무엇이든지, 아무것도 피지 않았을 시절일까. 그 때는 건강한 시절일까.
그날도 여김없이 노트북을 이불 위에 올려놓은 채로 눈을 뜨고, 항상 창문 밖에서 자잘하게 들어오는 햇빛에 부스스 웃은채로 옆에 놓인 안경을 썼고, 느닷없는 기침에 입을 막고,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버텨내려 해 봤자 소용이 없단걸 깨닫고는 뱉어내버렸어.
눈 앞에 들어온건 붉은빛, 조금은 덩어리 져 있는 핏덩이였지.
한번 쏟아낸 핏덩이는 멈추지를 않고, 회백색으로 네가 햇볕냄새가 나 좋다며 말했던 이불을 적셔냈어.
가만히 흐르고 있던 시계가 멈추기 시작한건 그때부터였지.
후들거리는 팔과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는 겨우겨우 연구실 밖으로 나가자, 평소에 너에게 관심도 없고. 냉랭하기만 했던 연구원들은 전부 다급한 얼굴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
이십몇년을 살면서, 네가 그렇게 관심을 많이 받아본 적은 그게 첫번째가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 그렇게 생각해.
그러고 너는 쓰러졌지. 여전히 입에서는 피를 내뱉으면서말야.
보라색을 좋아했어.
누구에게 건네는지도 모를 독백을 가만히 병원침대에 일어나서 중얼거렸지.
아니 지금도 좋아하고 있어. 보라색은.
잘 울지 않는 너였지만. 수술하지 않으면 고작해봐야지 5년을 살 수 있다는 말에 너는 처음으로 거기서 펑펑 울었어.
넌 꿈이나 희망을 증오하게 되겠지
그곳까지 가려고 해봤지만
결국 도착할 수 없었어
여기서 네가 조사단에 참가한 이유를 말해줄까? 넌 아직도 이게 진짜 네가 쓴 편지인지 아닌지 궁금해 하고 있을테니까.
미래의 너를 보고싶었던거야.
연구 기금이 부족해서 팔고, 팔고, 결국 다 팔아서 없어진 네 혈액은행을 보면서. 너는 땅을 치고 후회하며 결국 디아루가를 찾기로 결심했어.
.........심장 수술이란거, 시도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 세계에도 거의 없는 혈액형이란거, 정말 타고난 저주가 아닐까 싶어. 수혈때문에 수술을 포기하다니. 비참하기 짝이없지.
고작 몇퍼센트의 가능성을 걸고 수술을 하기에는 넌 돈도없었고, 그럴 담력도 없었고. 중환자실에서 살아남을 체력도 없어서....
하지만 그럼에도 너는 가족들을 위해서? 혹은 네 곁에 있는 포켓몬들일까, 아님 꿈을 위해서일까. 수술을 하기로 결심하고 미래에 과연 내가 살아있을까 하는 걱정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더 이상 사랑하는 가족을 볼 수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너는 가족들이 권유한 장기휴가도 거부하고.
디아루가를 찾으러 가는거야.
...아쉽지만 나는 미래에 가지 않았어, 멍청하게 파라시티에 서서 너에게 가지도 않을 이 편지를 쓰고있을 뿐이지.
..... 뭐 이 시간대의 너라면 이미 조사단에 참여하러 낙원지방으로 떠났을거고, 이 편지가 도착할 곳은 내 연구소일테니.
제대로 과거로 간다고 해도 이미 편지를 볼 때쯤이면, 너는 이 편지를 쓰고 난 후 다시 이 편지를 보는거야. ....엄청난 패러독스 아니냐.
............너에게 쓰는 것 같지만. 실은 그래, 이건 자기만족용 편지일 뿐이야.
혹시나 내가 돌아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겨 펼쳐보지 못한다면, 그래서 날 찾는 사람이 있다면, 대신 봐 줄 수 있겠지?
절대 흔들림없을것 같은 네 의지가 꺾여서 내가 빈손으로 연구실로 오게 된 이유는 대체 무슨변수였을까.
흔들려버리고 만거야. 마음을 열어주고 말았고, 결국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말과 항상 상냥함을 의심하기로 다짐했었지만....
마음이 여린 너는 결국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말았어.
조사단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던 사람도 있었어, 너는 끝끝내 곧 죽을 사람입니다.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그만큼 비밀을 털어놓는다는건 힘든일인데도, 너를 믿으니까 털어놓은거야.
비슷한 직종의 사람을 만나서 잠깐 즐거워지기도 해. 참고로 넌 그 사람을 믿고 조사에서 엉뚱한것만 만지다가 엄청 다친다는건 비밀이다.
나를 기억해준다는 아가씨가 있었지. 너는 끝까지 기억하지 말라고 고집을 부려, 기억해서.. 혹여나 네가 죽고 없어지면 그 아가씨가 슬퍼할테니.
가끔 연구원의 이름을 멋대로 싸라기라고 불러버리기도 해. ....실은 넌 모두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어, 그렇지?
다만 네가 기억 못하는 척을 해야 다른사람도 네게 정이 안붙을테니까. 그렇게 행동하는거고.
다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안경꼬맹이도 있었지. ...그 애 앞에서 차라리 다칠거면 곧 죽을 놈이 다치는게 낫다고 어떻게 말해.
십오년 정도를 함께하던 씨레오를 맡기기도 하고. 미리 포켓몬들에게 너는 인사를 해뒀잖아. 몇개월 뒤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연구소안에서 갑갑해하던 포켓몬들에게 미안해하고, 브리더에게 맡기기로 결심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몇몇은 그 사람들에게 맡기게 돼. 네가 그 사람들을 믿었다는 증거로 봐줘.
평생 하지도 않을 운동을 유난히 거기서 좀 하게될테니까 힘내라. 운동이란거, 차피 죽을 사람한테는 전혀 효과없다고 말해도 안들어 그녀석.
...검은 꼬맹이에겐 미안하게 됐지.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기분, 괜히 아픈곳을 찌른 기분이야. 하지만 어떻게 말하냐, 내가 곧 죽을 예정이라서, 남을 사람들이 무슨 기분을 느낄지 알고싶다고. 제대로 미친놈 취급 받을걸.
평생 뒷통수만 맞고, 배신당하고, 맨날 이상한 행동과 까칠하다며 다 싫어하는 널 보고 같이 있으면 즐겁다고 해준 놈도 있어.
이 편지를 만약 읽게 된다면, 바다나 별을 보고 화를 내든 울든 웃든 상관하지 않아. 들어는 줄테니까.
...맞아, 장의사도 있었지. ...잘 모르겠지만 죽고나서 그 사람에게 부탁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텐데.
그래, 다른 몇명도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네가 죽으면 슬퍼는 해줄거야. ....장례식에 초대한다면, 꽃 한송이 정도는 놓아주겠지만....
죽게 되더라도 장례식은 하지 않을거야. 그 녀석들은 계속 내가 어딘가에서 살아있다고 믿는게 낫겠지.
결국 내가 하고싶은말은 이거 한마디.
좋겠구나 베첼.
죽기전에 사랑받아서.
사랑하고, 사랑 받는 사람들을 위해 떠올려보렴
네가 있음으로 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혼자서 걸어가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나서.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넌 그 손을 잡아 이어나가게 되겠지.
네가 너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고작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모든 것에 대해 흑백을 가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길을 잃게 되면 떠올리렴
...
......
사실은 죽고싶지 않아.
가족이 보고싶어.
좀 더 다른 사람들이랑 지내고 싶어.
내가 다른사람들처럼 멀쩡한 피를 가지고 있었다면 좀 더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내가 아무런 꿈도 없었다면 차라리 마지막에 그런 행복을 누리지 않았을텐데.
이제야 처음으로 내가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처음으로 디아루가라는 꿈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항상 피를 뱉을정도로 아픈 날 밤. 결국 심장이 쓰리고 아파서 기절하고, 다음날 누군가가 발견해서 항상 병원에서 일어날때말야.
난 항상 기절했을 때 보랏빛의 우주를 봤어.
하도 겪으니까 이제 알 수 있었지, 천국이란건 대충 그런느낌이 아닐까.
죽어서 흙이되고, 그 흙은 다시 바람을 타고 날아가. 계속 그렇게 돌고 돈다면 말야.
나는 죽으면 별이 될거야.
보라색, 혼자 동떨어져있는 별.
다시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게, 혹여나 그 별이 폭발해 백색왜성이 되더라도 아무도 눈치 챌 수 없게.
그게 언젠가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해도 두려워하지 마
안녕, 베첼.
37년간 살아줘서 고마웠어. 마지막에 사랑받아줘서 고마웠어.
잘가, 베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