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마.
그게 메신저를 간신히 장애인 용 키보드를 이용해 쓸 수 있게 된 404, 타이히사에게 보낸 첫 메시지였다.
작성 중이던 말풍선이 한번 뜨고, 다시 사라졌다가 몇 초간 다시 나타나면 이번엔 말풍선이 사라지기는커녕 하얀색, 완전한 메시지가 되어 다시 제 눈앞에 한번 띄워진다.
‘정말 아냐?’
-insomnia
첫날을 기억한다.
호숫가에서 멍하니, 그날도 혹여나 호수 안에 잠긴 시체라거나, 증거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허망하기도,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기도 한 그런 생각으로 호숫가를 기웃거린 데에는 아마 제가 그 당시 그토록 원하던 ‘소재 수집’이라는 명분 때문이었다. - 사실 그런 것 보다는 좀 더, 사람이 많아 안전이 보장된 마을 보다야 감시도, 숲이 있어 은신하기도 편한 호수 쪽이 좀 더 소재가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멍하니 서피스를 두드리고 있자면, 갑작스럽게 제 옆으로 다가와 살갑게 인사를 했던 네 모습을 기억한다. 살가웠던가? 사실 그 부분은 이제 한 번의 죽음 탓인지 흐릿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하고 계시냐고 물었던가. 그 질문에 자신은 무어라고 대답했던가.
녹음을 틀어보면 알 테지만, 그건 저를 위한 소재나 유언을 남긴다고 쓸데없는 일상의 기록을 지운 과거의 자신 탓에 너와 나는 대화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애석하다.
잠깐 든 생각은 애석하다는 감정이었다. 사람의 기억이란 게 완전하지 못한 데에 대한 비탄이었을까? 이제 와서 저에게 필요한건 그 때의 대화였고, 과거의 자신은 그 대화가 앞으로 전혀 쓸모 없을거란 판단으로 돌아올 수 없는 시간 한 부분을 잘라낸 것이다.
사진에 대한 것은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츠구나가지만 - 여행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는다던가, 추억을 남긴다던가 하는 생각을 츠구나가는 이해하지 못했다. - 성인이 되고 몇 년 더 살다, 죽고 난 이후에서야 그 생각을 이해할 수있었다.
어찌됐던, 츠구나가는 타이히사에게 제 노트북으로 - 서피스는 아마 그 곳의 기차역 앞에 역시 뒹굴고 있을 것이다. - ‘그 때는 아니었어.’ 하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애초에 츠구나가 자신이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메시지를 보내고나서 한참을 기다리자면 타이히사에게 ‘그럼 그 다음은?’ 이라는 일본어가 박힌 문자 하나를 받았다. 아무래도 타이히사는 키보드 사용을 막 배웠으니, 느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방 배정이었어.’
온점을 찍고, 그 다음 글을 이어 쓰기 전까지 츠구나가는 깜빡거리는 작은 막대 하나 -커서-를 바라보았다. 그 날의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깜빡이는 커서처럼 사라졌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강렬히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혼자서 조용히,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었던 저였기에 남들 눈치를 보던 사람들을 제치고 제가 먼저 302호의 열쇠를 잡은 것. 사실 그 행동에는 누군가가 방이 두 개 뿐인 3층의 열쇠를 하나라도 잡으면 남은 301호는 껄끄러워서 - 뭐 얼굴을 마주치든, 생활소음이 흘러들어가던 여러 의미로, 또한 그때는 제가 사람들 눈에는 꽤 거슬리거나 특이해보일거라는 미묘한 자신감도 있었기에 - 아무도 택하지 않을거라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신의 그런 생각과는 달리 301호 열쇠를 잡아 가져간 사람이 있었지만. 그게 너였고, 그것부터 시작해서 저와 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걸까? 타이히사의 물음에 잠깐 생각하자면, 그것도 미묘해지는 지라 잠시 고개를 기울인다. 분명 츠구나가는 노골적으로 네가 열쇠를 집어간데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스스로를 정의했고, 그 뒤에 이어진 말도 직접 스스로가 너에게 찾아가 내민, 옆방을 쓸거면- 으로 시작하는 불쾌할지도 모르는 폭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건데 그건 그저 조건이라는 말을 담은 방을 바꾸라는 협박에 가까운 어조였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조금 스스로도 창피해져 고개를 숙인다.
그 뒤의 말을 생각하면, 금방 네가 타이히사의 글을 알아챘다는 사실에, 어쩐지 조금 궁금증이 생겨 이것저것을 물어봤던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친밀해지지도 않았고, 그렇게 서로 불쾌한 감정이 생기지도 않았다고 생각하곤 온점 뒤에 다시 글을 이으려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이히사에 대해 알고있었어, 404의 작품을 좋아했었어, 네 칭찬을 했었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404에 대한 칭찬의 말들은 제 가슴속 깊이, 혹은 무의식 깊숙이 404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에 습관적으로 나온 것들이었다.
물론 타이히사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우린 그 사람 얘기를 하는거잖아 우이. 하고 부드럽게 조언해주었다. 일본어의 나열일 뿐이지만. 타이히사라면 그게 나무라는 말도 아니었고 정말 저를 부드럽게 어르는 듯한 말투일거라고 츠구나가는 아무도 앞에 없는데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부끄럽지만. 입모양으로 웅얼거리곤 다시 손을 움직여 타이히사에게 한 문장만을 써 보냈다.
‘그 때부터 신경이 쓰인 건 맞는 거 같기도. 네 지적이 맞았어 타이히사.’
그 말에 병실에 누워있을 404는 그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을 뿐이다.
츠구나가의 귀에 타이히사의 말투로 ‘난 추리작가니까.’ 라는 말이 언뜻 들린 것 같기도 하다.
츠구나가는 타이히사가 재촉하지 않았음에도, 이젠 스스로 그 다음 일을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네 휴대폰을 받고, 조사에 나갔을 때다.
휴대폰 쓰는 법을 알았다는 것은 제 녹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내용이었다. 넌 같이 함께할 팀이 있으니 제 휴대폰을 가져가라는 음성도 남아있고, 네가 저에게 잔소리를 하며 휴대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도 그대로 녹음되어있다.
이런 걸 왜 남겨뒀지? 노트북을 뒤적이면 그 날의 서피스와 연동되어있던 클라우드가 열리고, 그 안에서 ‘22일’이라는 것을 검색해 쭉 오름차순으로 나열하면 제가 당시 쓴 ‘오르골의 소리’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범인인 서술트릭을 쓴 단편 소설 하나가 튀어나온다. 잠시 입을 다문다, 어쩌면 제가 했던 일 중 제일 많은 사람을 죽일 뻔 했던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죄의 무게가 갑자기 실감이 나서였을까?
그래, 아마 그게 좀비한테 쫓기며, 제 스스로 다른 사람을 전부 곤궁에 몰아넣었다는 경험을 했을 때이기 때문이다.
저도 인간인지라, 결국 한 줌의 양심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힘들게 펜션으로 돌아온 사람들에게 자신은 무어라고 했지? 아마 사과의 말을 내뱉었을 것이다. 저는 일찍 펜션으로 돌아와 누가 늦게 오는지 관찰하고 있었다. 분명... 그건 그 곳을 무대로 한 수필을 적기 위함이었겠지. 몰려든 좀비에 기겁하며 들어오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 둘 떠올린다. 그 당시의 츠구나가는 아마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전부 저 때문에 돌아오지 못할 뻔 했다는 그런 생각. 무의식적으로도 엄청 미안해하고 있었겠지.
그 다음 네가 억지로 제게 무언가를 먹이려 했고, 평소에도 빚지는 걸 싫어했던 저는 네 팔을 붙잡고 쓸데없는 말을 내뱉었었다. 빚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 말을 아마 메시지에 띄우면 타이히사는 나 때문에 또 그러는거야? 하고 핀잔을 줄게 분명했다. 그래, 저는 빚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타이히사에게 진 빚으로 드문드문 악몽을 꾸고, 그 때의 죽음을 그 빚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갚으라고 안하니 잠자코 받으라는 네 말에 그 날 울려 퍼졌던 오르골에 대한 자책감 또한 가득 담아 그 말을 했던걸지도 모르겠다.
‘죽고 싶은 것보다 더 죽고 싶은걸 부탁하고 있다.’
츠구나가는 빚을 만드는 걸 싫어했다. 누군가에게 빚을 지면, 도움을 받으면. 우선 제가 타이히사에게 져버린 그 큰 빚을 갚을 시간이 더 줄어드는 탓도 있었고... 제일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 같은 사람이 그런 걸 받아도 되는가에 대한 자학적인 태도. 자신은 네가 그렇게 아득바득 챙길만큼 소중한 인물도, 대단한 사람도 아니라는 데에 대한 자학.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며 네가 저를 죽음에서 건져낸 것도, 저에게 매번 천문학적인 돈을 쏟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전부...
글을 쓰던 손을 멈추고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부유하는 이물감만이 앞에 보일 뿐이다.
이물감.
먼지도 아니고, 그건 추상적인 무언가도 아니었다. 눈 앞에 보이는 정말 ‘거슬릴 뿐인’ 무언가였다. 그 껄끄러운 무언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금방 알 수 있었다.
사실 제가 빚을 지기 싫어한다고 말했던 것과는 달리 그 순간부터 계속 너에게 빚을 지고 있던거였다. 물질적으로 따지면 네 휴대폰을 계속해서 쓰고 있었고, 그 다음날엔 결국 네가 마음을 쓰다 못해 스스로 굶겠다고 나서는 강경책까지 냈었다.
지금도 종종 네가 말하는 말이다. 처음부터 신경 쓰지 않았다면, 아예 집으로 데려오지도 않았을거고 살리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
내가 네게 진 빚이라는 게, 오로지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는 그 불쾌한 사실이 제 몸을 감싼다.
네가 빚을 덜미로 저를 조사에 끌고 갔던 것도.
제가 바깥에서 외박했던 때에, 급하게 저를 구하러 와 구해줬던 것도.
제가 죽었던 날, 끝까지 저를 찾겠다고 보낸 문자나 말들도.
정말로 저를 죽음에서 끌어 올려 다시 산소를 들이마시게 해 주었던 것들도.
허황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전부 사실이다.
저 많은 빚들은 결국 제가 지고 있는 한 가지 큰 사실과 연관되기에.
스스로 생각해도,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이런 자신을 네가 신경 쓰고 있다는 큰 빚이다.
그리고 그 큰 빚은 결국 자신이 초래한 것과 같다는 것을 감안하면,
스스로의 무덤을 판 꼴이다. 애초에 네게 빚을 지고 싶지 않았다면 그저 네가 어떻든 네가 신경쓰이지 않게끔 원천을 차단하면 되는 것을. 오히려 빙빙 둘러온 지금보다 그게 훨씬 쉬운 일인 것을.
네게 관심을 주지 않고, 선을 긋고 말을 걸지 않으면 되는 쉬운 일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제가 그러지 않았던 것은 이제 분명했다.
타이히사가 옳았다.
글을 쓰던 손을 멈추고선, 노트북을 그대로 둔 채 목도리만을 두르고 몸을 일으켰다.
타이히사가 옳았어. 타이히사가 맞았어.
생각해보면 타이히사는 추리소설 작가였지. 그런 우스갯소리를 생각하며 얼굴에 조소를 띄운다.
더 이상은, 더 이상 네가 이런 쓸모없는 사람을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더 이상 저 스스로 이렇게 의미 없는 감정을 품고 싶지 않았다.
네가~ 로 시작하는 여태까지의 변명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저 스스로 상처입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였다.
일으킨 몸은 테이블 위에 있는 책 하나를 집고선 빨리, 네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제가 쓴 책을 네게 한번 가져다 준다고 했던가.
책을 넘겨보면 그 뒤에 적힌 네 이름이 보였다.
제가 그 곳에서 있던 일들을 적어내린 수필. 페이지를 넘기다 베인 손가락에서 잠깐 피가 새어나온다. 손에 들린 책 하나만이 제가 가진 이 감정이 전혀 픽션이 아니라고. 외치는 듯 했다.
빠른 걸음이 점차 뜀박질로 바뀐다.
목도리가 뛰는 제 몸에 의해 뒤로 나부낀다.
숨이 벅차다. 아마 퇴원하고 나서는 이렇게 많이 뛰어본 적은 없었겠지.
네가 보이면, 책을 한 손으로 꾹 쥐고 네 쪽으로 뛰어간다.
헉헉거리는 숨 소리가 네 귀에 거슬릴정도로 크게 울린다.
살아나고 멍하게 지냈던, 살아난 자신이 환상이라고 생각하며 너와 보낸 이 몇 개월보다 더 중요한 것을 전해야했다.
만약 이게 환상이라고 해도 전해야하는 것 만큼은 거짓도 아니었고, 환상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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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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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급하게..쓴다고..퀄을..날렷내요..(쓰발!)
영상..영상 만들려고햇는데..아님..윅스팔려고햇는데 뜨흑
저 라이사랑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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